
공단 근로자 급여·금강산관람료 등 남북 경제협력 매개체로 쌀 활용해야
최근 남북 경제협력(이하 남북경협)에서 쌀을 대체 지불수단으로 활용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는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상황에서 꽉 막힌 남북경협의 물꼬를 틀 묘수가 될 수 있다. 북한에 현금이 들어가는 어떠한 사업도 유엔(UN·국제연합)제재 때문에 말도 꺼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이들 사업에 군수물자로 전용될 여지가 없는 쌀을 대체 지불수단으로 사용한다면 말이 달라진다. 이 제안은 인도적 차원에서 유엔이 거부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대표)은 ‘개성공단과 유엔 대북제재의 연관성’ 보고서에서 연간 쌀 11만2000t을 북측에 지급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2014년 기준 개성공단 북측 근로자에 대한 연간 총급여 7963만869달러를 국제 쌀값으로 환산해 계산한 수치다. 또한 금강산관광으로 현대아산이 1996년부터 2008년까지 북한에 지불한 관람료는 4억9000만달러로, 1년에 약 5000만달러를 지불했다고 한다. 이 금액을 쌀로 환산하면 연간 7만t에 해당한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으로 북한에 지불하는 금액을 쌀로 대체하면 연간 18만2000t이 된다.
우리나라는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 때 연간 40만t가량의 쌀을 북한에 지원했다. 지난해에는 쌀값 안정을 위해 정부가 37만t의 쌀을 시장에서 격리했다. 세계무역기구(WTO) 차원의 쌀시장 전면개방을 20년간(1995~2014년) 미룬 대가로 우리는 지금 쌀이 남아도는데도 매년 40만8700t의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한다.
우리 정부는 현재 160만t의 쌀을 보유하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권장하는 필수재고량의 2배를 웃도는 물량이다. 정부는 쌀 생산을 줄이고자 논에 다른 작물을 재배하거나 휴경하는 농가에 보조금을 주고 있다. 이러한 쌀 생산억제 정책은 식량자급률이 50%에 미치지 못하고, 곡물자급률이 23%밖에 안되는 우리나라에서는 결코 바람직한 정책이 아니다.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은 신수요 창출을 위해 매년 쌀 60만t을 2년간 비축한 후 쌀 가공식품업계에 방출하는 ‘통일미 120만t 항시비축제’를 촉구하고 있다. 또 전체 인구의 7%에 해당하는 저소득층에 대한 쌀 무상지원제도를 복지 차원에서 시행하자는 제안도 함께 내놓고 있다.
통일을 준비하고 남북경협의 매개체로 쌀을 활용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쌀은 우리 민족을 먹여 살려온 귀중한 재화다. 남아돈다고 천덕꾸러기로 버려둬서는 안된다. 쌀의 효용가치를 확장해 다방면으로 활용하면 지금의 생산량으로는 터무니없이 모자라게 된다. 통일미 비축을 위해 매년 60만t, 저소득층 쌀 무상지원제도로 창출되는 추가수요 17만5000t, 여기에 남북경협에 사용되는 18만2000t을 합치면 95만7000t이 필요하다. 쌀 의무수입량 40만8700t을 제하면 55만t 정도가 부족하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쌀 생산목표치는 연간 460만t 이상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 70만㏊로 감소한 현재의 쌀 재배면적을 2010년 수준인 90만㏊로 되돌려놓아야 한다. 통일이 되면 북한 주민을 위한 쌀을 대부분 남한에서 생산해야 하므로 이 정도의 농지확보는 필수적이다.
북한은 계속되는 유엔제재로 경제사정이 더욱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연이은 가뭄과 홍수로 올해 식량사정은 최악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북정상이 만나 개성공단의 북측 근로자 급여와 금강산관광의 대가로 지불하는 관람료를 쌀로 대체하는 것에 합의하면 유엔이 말리기 어려워진다. 쌀을 이용해서 나라의 국운을 다시 세우고 기울어가는 한국 농업을 되살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아야 한다.
이철호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 고려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