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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풍년으로 쌀 산업이 붕괴되는 역설적인 상황에 직면해 있다. 쌀 재고량이 매년 누적되어 136만t에 달하고, 쌀값 하락은 고사하고 도정공장에서 벼를 쌓아둘 곳이 없어 받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쌀 소비를 늘리기 위해 가공산업에 눈을 돌리고 있으나 효과가 금방 나오는 일이 아니다. 남는 쌀을 사료로 사용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쌀 문제, 이제는 결단을 할 때라고 아우성이지만 농업분야에서 뾰족한 대책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오늘의 쌀 문제는 통일을 준비하는 국가사업의 일환으로 풀어야 한다. 쌀을 통일을 앞당기는 촉매로 사용하는 것이다.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은 통일을 위한 쌀의 역할을 <선진국의 조건 식량자급(식안연, 2014)>에 상세히 기술하였다. 통일이 되면 북한은 논 면적이 적기 때문에 7000만 인구가 먹을 쌀은 대부분 남한에서 생산해야 한다. 그러므로 현재 남한에서 쌀이 좀 남는다고 해서 쌀 생산을 줄이고 논 면적의 급속한 감소를 방기하는 것은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가 아니다. 2010년 96만㏊이던 남한의 논 면적이 불과 5년 사이에 80만㏊로 감소했다. 이를 2010년 수준으로 되돌리고 연 480만t의 쌀 생산 능력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북한은 연간 400만t의 양곡을 생산하고 있으며 약 100만t이 부족한 상태이다. 양곡 생산량 중 240만t은 쌀이고 160만t이 옥수수이다. 통일이 되면 북한주민은 옥수수보다는 쌀을 선호할 것이며 적어도 200만t의 쌀이 더 필요하게 된다. 이 부족분을 충당하기 위해 남한에서 통일미 120만t을 항시 비축하자는 주장이다. 매년 60만t의 쌀을 2년간 비축하였다가 쌀 가공산업의 원료로 방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추가 경비는 약 4844억원으로 추산되며, 우리 정부 외교통일예산의 11.8%에 해당한다.
북한주민을 위한 비축미가 있다고 해도 통일과 동시에 북한주민에게 부족한 쌀을 지원할 제도적 장치가 없다. 이를 위해 남한에서 먼저 저소득층에 대한 쌀 무상지원제도를 실시해야 한다.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전체 국민의 7%)에게 월 10㎏의 쌀과 쌀가공식품을 구입할 수 있는 쌀쿠폰을 지급해 진정한 복지국가의 면모를 갖추면, 통일 이후 남한 국민이 된 북한의 저소득층에게 자동적으로 쌀을 지원할 수 있다. 남한에서 저소득층 쌀 무상지원제도로 발생할 쌀의 추가 수요량은 약 17만5000t으로 추산된다. 이 제도를 운영하기 위한 추가 경비는 8106억원으로 예상되며, 우리 정부 보건복지예산의 0.8%에 불과한 금액이다.
남한 국민이 북한동포를 위해 120만t의 쌀을 항시 비축하고 있고, 통일이 되면 즉시 식량을 지원할 제도를 갖추고 있다고 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강력한 통일 메시지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 통일부 장관은 국회에 통일미 비축을 위한 예산을 요청해야 하며, 보건복지부 장관은 저소득층 쌀 무상지원제도를 위한 예산을 요청해야 한다. 이러한 요구가 국민의 힘으로 국회를 통과해야 우리는 통일을 준비하는 국민이 될 수 있다.
쌀 문제는 농업인만의 문제이거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국회에서 투쟁해 풀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농업은 국토를 보존하고 우리가 살아갈 환경을 만들어가는 주역이며, 그 중심에 벼농사가 있다. 국가를 보존하고 통일을 앞당기는 일에 쌀의 역할이 있기 때문에 쌀 문제는 온 국민이, 모든 국회의원이, 정부의 모든 부처가 협력하여 풀어나가야 한다. 그리고 문제의 시급성으로 보아 금년 내에 이 일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철호(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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