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안전은 준법정신에서 시작된다
이철호(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고려대 명예교수) 요즘 사람들이 먹는 음식의 60%는 가공식품이라고 한다. 밥과 국을 집에서 끓여먹고 김치를 집에서 담가 먹는 풍습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에 그나마 가공식품을 먹는 비중이 유럽이나 미국보다 낮다. 햇반이나 김치를 사먹는 사람이 더 많아지면 우리도 곧 미국처럼 가공식품 섭취 비율이 80%를 넘게 된다. 이와 같이 우리의 식생활이 가공식품에 전적으로 의존한다고 하는 것은 남이 만들어 주는 음식을 완전히 믿고 신뢰한다는 뜻이다. 이 믿음이 흔들리면 우리 사회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최근 계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식품사고들은 그 유형이 종전의 식품위생사건과는 좀 색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기술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대단히 낮았던 1960-70년대에는 롱가리트사건과 같은 식품제조업자의 무지와 부주의로 일어난 식품사건들이 많았다. 우리 식품산업이 급속히 발전했던 1980-90년대에는 화학간장사건, 라면 우지사건, 고름우유사건, 통조림 포르말린사건 등 비전문가들의 오판과 언론의 과장보도, 그리고 관리 당국의 미숙한 대응으로 식품산업이 억울하게 피해를 보고 소비자들에게는 국내 식품산업에 대한 불신만을 키웠던 시대가 있었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아크릴아마이드 파동, 과자 첨가물위해 파동, 광우병 쇠고기파동 등 세계적인 식품위생 이슈들이 그대로 우리사회를 긴장시켰다.
그러나 최근에는 가락시장 쓰레기통에서 수거한 것을 대형 음식점에 납품하거나, 유통기한이 지나 버려진 육재료를 곰탕집에 대량 판매하고, 저질 원료로 맛가루를 만들어 식재료로 유통시키고, 심지어는 계란 가공공장의 폐기물을 혼입하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불법행동들이 계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믿고 사먹는 가공식품이나 외식업소에서 판매되는 음식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반사회적 행동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건들은 식품안전 관리기술이나 해썹(HACCP)과 같은 관리체계의 적용 이전의 인간의 양심과 준법정신의 파괴에서 나타나는 사회현상이다.
길가에 쓰레기 봉지가 하나 놓이면 금방 그곳이 쓰레기장이 된다고 한다. 사회의 기강이 무너지고 도덕성이 파괴되면 걷잡을 수 없이 불법이 판을 치게 된다. 온 국민이 가장 즐겨보는 일일 연속극인 TV 저녁뉴스에서 원칙 없는 사회 부조리와 정치인들과 고위 공직자들의 파렴치한 행동들이 연일 공개되고 있다. 그러나 응분의 책임을 지거나 처벌받는 사람이 별로 없다. 저축은행들의 사기 행각으로 수많은 서민들이 피땀 흘려 모은 돈을 눈뜨고 강탈당하는 사태가 벌어져도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죄를 지어도 처벌이 공평하지 않은 사회에서 한수원 비리, 방위산업 비리, 경남기업 비리 등 기업인들과 정치인, 공무원이 결탁한 대도들의 작태가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다. 국회의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는 사회기강을 무너뜨리고 법을 무력화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이제 이 나라 지도층들의 자녀 불법이민이나 위장전입은 문제도 되지 않는다. 병역기피와 부동산 다운계약서에 의한 탈세 행위마저 면죄부를 주는 판국이다. 권세 없이 법을 지켜온 선량한 국민들은 허탈감과 배신감으로 병들어가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깨끗하고 정직하게 만든 음식을 사먹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식품안전관리 이전에 법을 지키는 사회적 풍토가 마련되어야 한다. 법이 지켜지지 않으면 온 국민이 마음 놓고 먹고 살 수가 없는 것이다. 법이 만인에게 공평하고 엄격해야 하는 이유이다.
깨끗하고 안전한 음식을 먹으려면 국민 모두가 정직하고 법을 소중히 지켜야 한다. 우리가 선진국을 동경하는 이유이다. 선진국이 되려면 먼저 도덕 재무장 운동을 펼쳐야 한다. 권세를 앞세워 법을 무시하고 파렴치한 행동을 일삼는 자들이 사회를 이끌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 유럽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우리 사회에 정착시켜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부정 불량식품을 4대악의 하나로 규정하고 척결하려고 하지만 오히려 더 악화되고 있는 까닭을 깊이 성찰해야 한다.
이철호(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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