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지진과 쓰나미, 방사능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일본 이재민대피소에 써 놓은 ‘食糧(식량)’이라는 대형 글자를 하늘에서 찍은 한장의 사진은 ‘위기 때 국민이 무엇을 원하고,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인간이 생명줄을 놓지 않는 한 위기가 닥치면 가장 먼저 먹을 것부터 챙기는 것은 본능이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굳건한 식량안보는 국방보다 더 소중한 국가와 공동체의 ‘안전판’이라고 한다. ‘먹는 것(食)이 국방(兵)보다 중요하다’고 한 공자의 말은 2,500년이 지난 지금도 진리다.
최근 세계 식량위기 경보음이 높아지면서 식량위기 대응논의가 한창이다. 그동안 식량안보는 우루과이라운드(UR) 농산물 시장개방 이후 ‘비교우위론’이 득세하면서 무역을 통해 보장 받을 수 있는 것인 양 호도됐다. 식량의 75%를 다른 나라에 의존하는 나라에서 ‘에너지·자원외교’는 외치면서도 ‘식량외교’라는 말은 어떤 정부의 발표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또 농업의 가치는 국내총생산(GDP)의 크기 정도로만 인식돼 왔다.
그런 지난날을 생각하면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걱정거리가 적지 않다. 국가식량조달시스템 구축에 이기주의가 고개를 들고, 해외농장 개발과 유통망 구축 등 나라 밖만 바라보는 논의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식량안보는 ‘안전한 식량의 안정적 확보’가 핵심이다. 그런 만큼 식량의 국내 생산 극대화와 비축이 우선돼야 한다. 식량안보 논의 결과가 공기업에 ‘해외 일감’ 하나 더 얹어 주는 식이 돼서는 곤란하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유휴농지 개발과 곡물간 자급률 불균형 개선 등을 통해 식량자급률을 높이는 데 주력하는 것이다. 공기업과 민간의 해외 식량자원 개발지원은 그 다음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식량안보는 식량자급률 제고가 요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