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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농업장관회의에서 미국·영국 등의 장관들은 무역자유화와 시장개방이 농업분야에 광범위하게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루과이라운드(UR)나 세계무역기구(WTO) 협상 등에서 식량 수출국들이 하는 전형적인 주장이다. 반면 필자를 비롯한 일부 장관들은 농업분야의 특수성을 강조하고 시장경제 만능주의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세계 식량위기 발생시 신속대응포럼을 구성하고 농산물시장정보시스템을 만들어 G20 국가가 주도적으로 농업위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합의문 제정에도 일조했다.
이런 와중에 사르코지 당시 프랑스 대통령의 발언은 색다른 느낌을 갖게 했다. 각료회의 전날 엘리제궁에서 사르코지 대통령은 기상이변과 곡물파동, 농업 여건변화에 대비하는 G20 농업장관들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면서 인류생존과 관련된 식량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곡물시장의 피해 방지를 위해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의 재조정이 필요하다”면서 “규제 없는 시장은 시장이 아니다”라고까지 말하는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다. 농업의 특수성을 강조하면서 다국적기업 위주의 농산물 시장구조를 비판한 것이다.
G20 농업장관회의가 개최된 지 1년이 지났으나 세계곡물시장은 여전히 불안하다. 기상이변과 생산부족으로 인한 곡물가격 상승, 곡물 수요증가, 투기자본 참여 등 다양한 원인으로 곡물시장 불안은 지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대의 곡물자급률을 보이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하면 고민이 깊어진다. 매년 농지가 감소하고 농업인구도 줄어들며 생산여건은 더욱 어려워진다. 그나마 주식인 쌀은 그간의 투자로 안정적인 생산기반이 구축돼 수급불안이 바로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식량 불안정은 우리 경제 전반에 많은 영향을 줄 것이다. 서둘러 안전장치를 갖추어야 하나 그간 성과나 현실적 한계를 고려하면 걱정이 앞선다. 우리 정부나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도 해외농장 개발, 국가곡물조달시스템 구축, 해외시장 정보 수집, 수입선 다원화 등 다양한 대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많은 한계가 있다. 국내생산량 증대, 기후변화 및 환율·국제유가 급변동 대비, 대체에너지 개발 등 종합적인 대책을 국가적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식량의 중요성은 더 강조할 필요도 없다. 가까운 필리핀의 사례를 보자. 필리핀은 1960년대 국제미작연구소가 있을 정도로 농업연구가 활발했으며, 3모작이 가능하고 한때 쌀 수출국이었다. 그러나 농업투자 소홀로 최근에는 세계 최대 쌀 수입국으로 전락했다.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은 “한국보다 훨씬 잘살던 필리핀이 불과 40여년 만에 가난한 나라로 전락했다”면서 필리핀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죄의 뜻을 밝혔다. 우리나라 지도자들도 농업투자 소홀로 실패한 지도자라는 오명을 얻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식량안보’라는 용어에서 ‘식량주권’으로 변해야 한다. 식량이 안정적으로 확보되지 않으면 주권국가로서의 역할도 행사하기 어렵다. 다가오는 새해에도 식량문제는 결코 안심할 수 없다. 더 큰 관심을 기울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푸는 데 머리를 맞대자. 생산량 증대, 생산비용 절감, 품종 개발 등 기술혁신과 연구개발 강화, 생산기반 확충, 해외안전망 확보 등 전방위에 걸친 식량안보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그렇다고 다른 나라를 무조건 모방해도 안 된다. 우리 실정에 맞는 대책을 차분히 추진하는 것이 식량 불안 시대 우리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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