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위기의 터널 속에 있는 세계 경제가 설상가상 식량위기에 직면했다. 전 세계 옥수수 수출량의 절반을 책임지는 미국에서 반세기 만에 최악의 가뭄이 들어, 옥수수와 대두 선물가격이 19일(현지시간)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기 때문이다.
특히 러시아와 카자흐스탄도 기상 악화로 올해 수확량이 급감할 것이라고 경고해, 30여 개국에서 폭동을 촉발했던 지난 2007년과 같은 식량위기가 재연될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옥수수 9월 인도분은 이날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장중 부셸당 8.16달러를 기록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대두 8월물 가격도 장중 17.43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밀 선물 가격도 장중에 거의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곡물값이 급등하자, 수입국은 비싼 가격이 부담스러워 매수를 중단하고 시장을 주시하고 있다. 미국의 지난주 해외 대두 수출이 6개월 만에 최소치를 기록했고, 옥수수는 1년 전의 20% 수준으로 급감했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라프는 지난달에만 옥수수 가격이 51% 폭등했고, 밀값은 40% 치솟았으며 대두 가격은 20% 가까이 급등했다고 전했다.
지난 3년간 옥수수 선물가격은 2배가 됐고, 대두 선물도 1.6배나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옥수수 선물은 지난 2009년 3~4달러대에 거래됐고, 대두 선물도 그해 9~10달러선에 머물렀던 점을 감안하면 최근 곡물값은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전 세계가 미국 곡창지대의 기상 예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기상학자들은 앞으로 2주간 가뭄이 지속된다고 예보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비가 오지 않는 한 현재 8달러 초반에 거래되는 옥수수 부셸당 가격이 오는 8월 초 9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한 트레이더도 있다고 전했다.
민관 모두 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한 무역업체 임원은 "30년 이상 종사했지만 단연코 내가 본 가장 심각한 기상 상황과 수급"이라며 "심지어 2007~2008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5년 전에는 10억명이 굶주린 식량위기로 방글라데시부터 아이티까지 많은 나라에서 폭동이 벌어졌다.
톰 빌색 미국 농무부 장관은 "매일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고 토로했다. 지난주 농무부는 지난 1956년 이후 최악의 가뭄으로 2012~2013년 옥수수 경작지 1에이커(4046㎡)당 수확량 예측치를 지난달 166부셸(1부셸=25.4kg)에서 146부셸로 12% 줄이고, 재고량 예측치도 37% 하향 조정한다고 밝혔다. 트레이더들은 옥수수 수확량이 이보다 8~15% 더 줄 것으로 예상했다.
국제연합(UN) 식량농업기구(FAO)의 호세 그라지아노 다 실바 국장은 "소득의 75%를 식비로 쓰는 저소득층과 사회 취약계층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할 때, 최근 식량 가격 급등세가 크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반론도 있다. 미국 농무부의 조셉 글라우버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쌀과 밀이 풍부하게 공급돼, 현재 상황이 지난 2008년보다 훨씬 낫다고 판단했다. 그는 "가격이 더 높아졌다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2007~2008년에는 밀도 많이 부족했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4년 전과 다른 점은 투기 없이, 기상이변에 따른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투기마저 가세할 경우 더욱 심각한 식량위기가 초래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제프리스 배치의 숀 맥캠브리지 애널리스트는 2008년과 큰 차이는 투기 자금이 더 적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