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 맹신해 식품 폐기 상당
다른 나라 사례 살펴 최선책 찾아야
한해 국내 음식물 쓰레기로 손실되는 경제적 가치는 25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 곡물자급률이 20%대로 떨어진 지도 꽤 오래됐다.
우리는 이런 악조건에서도 대부분의 국가가 외면하는 식품 표시제 하나를 고집스럽게 유지하고 있다. 가공식품에 기재된 ‘유통기한’이다. 유통기한 경과로 인한 가공식품 폐기비용이 2012년 기준 연간 1조3000억원 이상이란 연구 결과가 있다. 2016년 한국심리학회지에 따르면 소비자가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의 소비 또는 폐기를 판단할 때 각자의 유통기한 관련 지식과 동기가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유통기한 관련 지식이 많고 평소 위험을 잘 감수하는 성향의 사람이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버리지 않고 먹을 가능성이 더 높다.
유통기한에 대한 국내 소비자의 맹신이 강한 만큼 오해도 쌓이고 있다. 유통기한을 판매기한·사용기한·품질유지기한을 포괄하는 용어로 잘못 아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유통기한과 관련된 지식 수준이 떨어져 기한 경과 식품을 버리기 일쑤다. 일반적으로 유통기한이 10일인 식품을 냉장·냉동 등 표기된 대로 보관하면 그 1.5배인 15일까지 섭취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유럽연합(EU)·호주·캐나다 등엔 유통기한 표시제 자체가 없다. 유통기한이 불필요한 식품 폐기를 유인한다는 이유에서다. 유엔(UN·국제연합) 산하기관인 국제식품규격위원회(코덱스·CODEX)도 유통기한 표시를 소비자가 오인할 우려가 있다며 2018년 식품 표시 규정에서 삭제했다.
최근 유통기한의 대안으로 부각되는 것이 소비기한이다. 일반적으로 소비기한은 유통기한보다 길다. 유통기한은 식품 부패시점을 기준으로 안전계수 0.7을 적용해 설정하는 반면에 소비기한은 안전계수 0.9를 적용하기 때문이다. 소비기한은 미국·EU·일본 등 선진국에서 채택하는 제도다.
우리나라도 이제 유통기한을 손볼 때가 됐다. 과거와 다르게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한국소비자원·국회 등에서도 소비기한 표시제 도입과 관련해 전향된 모습이 감지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식량안보문제가 부각된 것도 소비기한으로 갈아타기에 좋은 조건이다.
소비기한 도입을 둘러싸고 찬반 논쟁뿐 아니라 어떤 방식을 택할지 다양한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제도의 연착륙을 위해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을 함께 표시해야 한다거나 소비기한만 표시해야 한다는 방안들이 나온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해 식품 섭취기한 표기를 ‘Best If Used By(~까지 사용하면 최상)’로 통일할 것을 제안했다. 소비자를 헷갈리게 하는 다양한 표기 때문에 버려지는 음식물이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FDA는 미국에서 버려지는 식품이 매년 1610억달러 규모이며, 이중 20%가 소비기한 표기 오해에서 비롯됐다고 발표했다.
소비기한 도입을 논의할 때 한국과 식량자급률 등의 사정이 비슷한 일본의 식품 섭취기한 제도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품질변화 속도가 빨라 5일 이내에 소비해야 하는 제품은 소비기한, 이보다 품질변화 속도가 느린 제품은 상미기한으로 표시한다.
국내에서 소비기한 도입 논의가 시작된 것은 식품업계는 물론 식재료를 제공하는 농업계에서도 반길 일이다.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최선의 방안이 마련되길 기대한다.
박태균 (식품영양학과이화여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