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C시대 (1)우리 사회는 어떻게 바뀌나
코로나19 완전히 끝나도 기존 사회 질서 회복 어렵다 세계 석학·전문가들 진단
재택근무·화상회의 등 촉진 원격진료 조기 발전 기대감 스포츠 활동 등은 변화할 듯
각국 식량수출 제한 잇따라 식품 공급시스템 붕괴 우려 외국인 노동자 수급 위기 빈발
학교수업, 공장조업, 해외여행, 스포츠, 영화관람, 박람회, 외식, 결혼식, 예배….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일, 어디론가 이동해서 하는 일들이 온통 제약을 받고 있다. 관련 분야엔 위기가 닥쳤고 소시민의 일상에도 적잖은 변화가 생겼다. 혼란을 주도하는 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다. 세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코로나19가 종식돼도 인류가 종전의 질서와 문화를 회복하긴 어렵다는 얘기다.
◆세계변혁 일으키는 감염병=4일 서울 강남의 한 예식장에서 유튜브 결혼식이 열렸다. 신랑·신부는 생중계 모니터를 통해 부모와 하객들에게 인사했다. 남미 국가인 페루와 파나마는 ‘남녀 외출 2부제’를 시행 중이다. 국민들의 바깥출입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현실로 다가온 코로나19 시대의 단면이다.
감염병은 독재자나 혁명군 이상의 힘을 보이며 세계사와 사회상을 극적으로 바꿔왔다. 14세기 흑사병(페스트)이 유럽을 덮쳐 인구가 2억명이나 격감하자 영주들은 더이상 농노를 부릴 수 없게 됐다. 자작농이 늘고 왕권이 강화되면서 봉건제의 아성은 흔들렸다. 세계적으로 5000만명의 사망자를 낸 1918년 스페인 독감 이후에도 노동력 감소가 문제였다.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포드주의’로 불리는 자동차혁명과 상품 대량생산 체제를 촉발했다.
코로나19 직전의 세상은 미국을 중심으로 무역·금융·안보 질서를 형성한 자유주의와 세계화의 시대였다. 이런 체계가 코로나19로 흐트러지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세계가 얼마나 달라질지는 정확히 예상하기 어렵다. 다만 이전과 분명히 다른 시대가 도래한다는 게 세계 석학과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국제정치의 대가인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세계질서를 영원히 바꿀 것”이라고 진단했다. <뉴욕타임즈>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앞으로 세계 역사는 ‘BC(Before Corona, 코로나 이전)’와 ‘AC(After Corona, 코로나 이후)’로 나뉠 것”이라고 예측했다.
◆온라인 영역확대 가속화=코로나19는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언택트(Untact·비대면)’ 활동을 촉진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그동안 온라인 활동은 쇼핑·금융 등 개인적이고 제한된 영역에서 주로 이뤄졌다. 중요한 일은 가능한 만나서, 모여서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강했지만 그런 성역도 점차 축소되는 분위기다.
재택근무, 화상회의, 원격수업 등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효율성을 높여가고 있다. 최근 원격의료 관련 업체의 주가 상승은 원격진료 시대가 앞당겨질 것이란 기대감을 반영한다.
이미 개발하고서도 규제 때문에 상용화되지 못했던 기술, 대면 활동을 해야 격식을 갖춘 것이란 형식에 얽매여 추진하지 못했던 업무·교류 방식 등도 빛을 볼 가능성이 크다. 의료·교육 여건 등이 취약한 농촌지역의 물리적 한계가 코로나19 이후엔 더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는 셈이다.
온라인 대체가 어려운 활동은 새로운 활로를 모색할 처지에 놓였다. 실내공간에서 격렬하게 움직이는 스포츠, 다중 공연관람 등이 그런 경우다. 홈트레이닝 용품 판매와 넷플릭스(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이용 증가 등은 코로나19가 스포츠·문화 활동의 변화를 채근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장은 “코로나19 이후 원격교육·의료·행정 등 비대면 서비스가 활성화할 전망”이라며 “언택트경제와 바이오헬스 등 새로운 기회를 포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공급망 흔들=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 기고에서 “코로나19가 성곽도시(Walled City)의 부활을 촉발했다”는 관점을 시사했다. 높은 성으로 경계를 두른 성곽도시는 봉쇄·격리·차단·고립을 상징한다. 사람과 물자의 자유로운 이동이 보장되지 않는 체제다. 노정객은 성곽도시가 ‘시대착오적’이라고 우려했지만 ‘코로나19 이후’엔 세계적으로 촘촘했던 생산·공급망이 헐거워질 가능성이 크다.
성곽도시 시대를 예고하듯 러시아·베트남 등 주요 곡물생산국이 식량 수출을 제한하면서 식량안보 얘기가 회자된다. 우리나라와 함께 이민자 노동력에 의존해온 미국·유럽 등의 농업생산도 비상이 걸렸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각국의 봉쇄로 인한 공급망 악화 탓에 식품 공급 시스템이 붕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FAO의 전망은 곡물자급률이 21.7%에 불과한 우리나라를 향한 맞춤형 경고처럼 들린다.
이정환 GS&J인스티튜트 이사장은 “급속하게 확장됐던 글로벌밸류체인이 타격을 입으면서 국내 공급망의 필요성을 재인식하는 목소리가 커졌다”면서 “코로나19 이후엔 국내 원료 농산물과 함께 넓은 농촌공간에 대한 여가수요가 증가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특히 빈발하는 감염병 상황 등으로 외국인 노동자에 의존한 농업생산 리스크는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며 “장기적으로 농업생산을 유지하려면 노지농업의 스마트화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홍경진 기자 hongkj@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