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안보 차원서 농업생산성 높이고 복잡한 농산물 유통구조 혁신 힘써야
이상고온 현상으로 2008년 러시아 남부의 곡창지대에서 밀과 보리 생산량이 급감하자 전세계에 후폭풍이 몰아닥쳤다. 곡물값이 치솟았다. 지구촌 곳곳에서 정치적 소요가 발생했다. 리비아·튀니지 등 북부 아프리카와 이집트·시리아 등 중동에서 민중봉기가 발생했다. ‘아랍의 봄’ 사태의 시발점이었다.
식량위기는 정치적 위기로 비화하고 한 민족의 명암을 결정하기도 한다. 인구가 늘고 기후변화가 가속화할수록 식량위기는 수시로, 그리고 대규모로 발생할 것이다. 지금 추세라면 2033년이면 지구촌 인구가 110억명에 도달할 것이라는 극단적 전망도 나오고 있다.
올 4월 영국 공영방송 BBC는 <어떻게 110억명을 먹여 살릴 것인가?>란 프로그램에서 제2의 녹색혁명(The Second Green Revolution)을 위한 대안을 제시했다.
첫째, 농산물 유통구조의 혁신이다. 농산물이 산지에서 소비자의 식탁으로 가기까지 폐기되는 비율이 30%에 이른다고 한다. 아프리카 케냐의 한 망고 생산지 사례를 보면 수확기인 11월에서 이듬해 3월 사이에는 망고가 지천으로 깔린다. 망고값은 폭락하고 농민들은 제값을 받지 못한다. 생산량의 80%는 폐기된다. 그런데 농민들이 힘을 합쳐 보관시설을 설치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수확한 망고를 저장해 출하량을 조절하거나 주스 등 가공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된다. 농민은 제값을 받을 수 있고, 망고는 연중판매가 가능해진다. 이런 방식의 유통구조 혁신이 가능한 영역은 여전히 산재해 있다.
둘째, 농작물 생장촉진기술이다. 최근 과학자들은 엽록소 내 특정 효소의 효율을 향상시켜 식물의 생장을 40% 이상 촉진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농업생산량이 획기적으로 증대될 것이다.
셋째, 유전적 다양성 확보다. 현재 주요 곡물은 1~2개 종자가 주로 사용된다. 수확량 증대를 위해서다. 이렇게 되면 다양한 유전적 성질을 가진 종자가 도태될 수 있다. 인도에선 10만4000여종의 벼 종자가 사라졌다고 한다. 사라진 유전적 특질 중에는 가뭄에 강한 벼, 질병에 강한 옥수수, 열에 강한 밀 등이 있을 수 있다. 기후온난화에 따른 급속한 기후변화와 질병에 적응하기 위해서도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식량자급률이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우리나라는 국가안보 차원에서 농업생산성을 높여야만 한다. 비교우위론에 입각해 농산물 수입을 정당화하는 것은 무책임한 논리다. 1970년대 <통일벼>의 기적을 이룬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역량이면 농산물 생장촉진기술이나 유전적 다양성 관련 연구에서 성과를 낼 가능성이 충분하다.
아울러 농산물 유통구조 혁신에 힘써야 한다. 한국 농업의 고질적 문제인 농산물 수급조절 실패를 극복하고자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을 위한 노력은 꾸준히 있었다.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정부는 유통시설 개선, 농산물의 생산·출하 조절 등 다양한 정책적 노력을 시도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산물 유통구조가 복잡하다는 문제는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산지와 소비지 가격이 많게는 10배까지 차이 나는 게 현실인데, 농민과 소비자 모두가 만족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일각에서는 생산자의 힘이 중간상인의 힘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말도 나온다. 힘의 균형은 농협 등 농민 자조조직을 통해 달성할 수밖에 없다. 식량안보 위기가 고조되는 21세기에 농가조직화와 농민의 단결된 힘이 요청되는 까닭이다.
윤배경 (법무법인 율현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