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온난화·AI 등 문제는 ‘진행중’ 국민·정부·기업 모두 힘을 모아야
이달 우리나라에 유엔식량농업기구(FAO) 협력연락사무소가 설치된다.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한국사무소 설립을 위해 3월18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FAO 사무총장과 협상을 마쳤다. 연락사무소가 생기면 세계 식량안보에 우리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놓고 일부 언론은 ‘세계 식량문제 해결, 한국이 이끈다’는 헤드라인을 뽑기도 했다.
지난해 정부가 쌀 6만2300t을 해외에 원조한 것은 사실이다. 이 실적 중엔 식량위기가 심각한 중동ㆍ동아프리카 4개국에 사상 처음으로 쌀 5만t을 원조한 기록도 포함돼 있다. 한국이 식량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이 된 세계 유일의 나라라니 어깨를 조금 으쓱거려도 괜찮을 성싶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내 코가 석자’란 속담이 잘 어울린다. 농작물 중 자급률이 가장 높은 쌀로 인한 착시현상이 사태의 심각성을 가리고 있다.
한국은 곡물자급률이 24%가 안되는 상황이다. 쌀을 제외하면 10%에도 못 미치고, 밀ㆍ옥수수의 자급률은 1∼2%에 불과하다. 2017년 기준 밀 500만t, 옥수수 1000만t 등 곡물 1600만t을 수입했다.
쌀이 조금 남아돈다고 해서 식량 걱정은 기우라고 보는 정부ㆍ국민ㆍ언론의 시각은 위험하다. 위기의 본질은 ‘앞으로도 식량이 떨어지면 외국에서 싸게 수입해 먹지’란 느슨함이다.
식량문제가 조마조마하게 느껴지는 것은 네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 사막화, 미국의 바이오 연료정책 등 전세계적인 식량부족을 초래할 요인이 현재진행형이다.
둘째, 우리 식탁에 값싼 식재료를 공급해온 중국이 식량 수입국으로 전환하고 있다. 중국은 일부 곡물 수출을 제한하고 있으며, 세계 식량의 ‘블랙홀’이 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러시아도 자국 식량의 수출에 자물쇠를 걸어 잠그고 있다.
셋째, 외국에서 식량을 값싸게 사올 수 있는 시대는 저물었다. 2007∼2008년에 경험한 국제 곡물가격 급등은 예고탄일 뿐이다.
당시 미디어에 식품가격이 물가상승을 주도한다는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이란 경제용어가 자주 눈에 띄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국제 곡물시장은 ‘엷은 시장(Thin market)’이어서 공급량이 조금만 줄어도 가격이 크게 오를 수 있다.
넷째,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아프리카돼지열병(ASF), 구제역 같은 악성 가축전염병이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것도 식량 사정을 암울하게 하는 요인이다.
유비무환이다. 식량위기란 ‘재앙’을 피하기 위해 국민ㆍ정부ㆍ기업이 힘과 지혜를 모을 때다. 국민은 식량을 아끼고 음식물쓰레기를 줄이는 등 생활 속의 작은 일부터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 국민 1인당 하루 음식물쓰레기 발생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음식물쓰레기를 10% 줄이면 식량자급률이 0.3% 오른다.
정부는 유휴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이모작 등을 통해 식량자급률의 마지노선이 무너지지 않도록 철통방어에 나서야 한다.
곡물 등 식재료의 주요 사용처인 식품기업, 그리고 농기업은 해외농업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올초 우크라이나의 곡물터미널을 확보한 것은 좋은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식량파동에 대비해 국내 기업이 해외 전진기지를 마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덧붙여 차제에 식량안보란 용어를 새롭게 바꾸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서양에선 ‘Food security’라고 하면 식품을 필요할 때 사 먹을 수 있는 개인의 능력을 가리킨다. 자급률 앞에 붙은 곡물ㆍ식량ㆍ식품ㆍ양곡 등의 의미도 확실하게 규정해야 국민이 헷갈리지 않는다.
박태균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