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나라 때 이신이 쓴 시 ‘민농’ 곡식 일궈 백성 살리는 농민 착취·외면하는 세태 꾸짖어
농업, 백성뿐 아닌 땅도 살려 환경파괴 점차 심해지는 오늘 ‘농자천하지대본’ 더욱 절실
지셴린(季羨林·1911~2009년)은 중국인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는 학자다. 베이징대학교 부총장을 지내면서 원자바오 총리 등 중국 지도자들의 멘토 역할을 했던 ‘나라의 스승’이다. 그가 <논어> <맹자> 등의 철학서를 비롯해 <사기> <시경> <당시> 등의 고전에서 148개의 구절을 뽑아 중국인들의 삶의 지침으로 제시했다.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중국 고전의 소중한 가치를 드러내는 정신적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지셴린은 이 글들을 두고 “이를 다 외우면 경계가 한단계 더 올라간다. 문학 방면에 그치지 않는다”라고 하며 모든 사람들이 암기하기를 권했다. 이중에 농업의 소중한 가치와 농민들의 노고를 기리는 글도 당연히 실려 있다.
먼저 <삼국지>에 나오는 ‘국이민위본 민이식위천(國以民爲本 民以食爲天)’이라는 구절이 있다.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여기고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처럼 여긴다’는 뜻으로, 삼국시대 오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손호(孫皓)가 폭정을 저지르자 명재상 육개(陸凱)가 올린 상소문에 있는 글이다. 나라의 근본이 곧 백성이므로 지켜줘야 하며, 그 백성을 먹여 살리는 것이 식량이므로 농업을 소중히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는 당나라 이신(李紳)이 쓴 ‘민농(憫農)’, 즉 ‘가엾은 농부’라는 당시(唐詩)에 있는 구절 ‘수지반중찬 입립개신고(誰知盤中餐 粒粒皆辛苦)’다. 착취당하는 농민들의 애환을 노래한 시로, ‘누가 알리오, 상 위의 쌀 한톨 한톨이 모두 농민의 땀방울인 것을’이라는 뜻이다. 얼마 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다섯살배기 외손녀가 중국어로 암송하는 동영상이 국제적으로 큰 화제가 됐던 바로 그 시다. 시는 두수로 되어 있는데 그 전문을 소개한다.
春種一粒粟(춘종일립속) 봄에 한알 곡식 뿌려서
秋收萬顆子(추수만과자) 가을이면 만알 곡식 거두네
四海無閑田(사해무한전) 세상에는 노는 땅 한뼘 없지만
農夫猶餓死(농부유아사) 농부는 되레 굶주려 죽는구나
鋤禾日當午(서화일당오) 한낮 무더위에 김을 매니
汗滴禾下土(한적화하토) 땀방울이 후두둑 땅을 적시네
誰知盤中餐(수지반중찬) 누가 알리오 상 위의 쌀
粒粒皆辛苦(입립개신고) 한톨 한톨이 모두 농민의 땀방울인 것을
이신은 백거이·원진 등과 함께 시를 통해 사회적 폐단과 민생의 질고를 고발하는 신악부운동(新樂府運動)을 주도했던 인물이었다. 단순히 예술적·서정적 표현에 치중하던 현실도피적인 시풍에 반대하며 현실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시를 발표함으로써 당시 권세가들로부터 큰 미움을 받기도 했다. 이신은 신제악부(新題樂府) 20편을 지어 신악부운동을 선도하였으나 현재는 소실돼 없고, 위의 시 ‘민농’이 대표작이다.
시는 먼저 한알의 곡식으로부터 만배의 수확을 얻는 농업의 놀라운 생산성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지주에게 거의 모든 수확이 돌아가고, 농민들에게는 생계를 이어나가기도 힘든 소작료가 주어질 뿐이다. 일년 내내 혼신의 힘을 기울여 곡식을 거두지만, 정작 그것을 먹는 사람들은 농민들의 수고에 감사의 마음은커녕 관심조차 없는 세태를 꾸짖고 있는 것이다.
지셴린은 진정한 농업의 가치와 농민들의 노고를 잊지 말라는 의미에서 위의 구절을 정했을 것이다. 옛날과는 달리 먹을 것이 풍족해 농업과 농민에 대한 관심이 더더욱 줄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업이 천하의 가장 큰 근본(農者天下之大本·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은 단순히 옛 시대에 한정된 시대착오적인 구호는 아니다. 환경파괴와 자연훼손이 심각한 오늘날 더욱 절실한 말일 것이다. <주역>의 삼재사상(三才思想)은 하늘과 땅과 사람을 천하의 근본으로 삼는다. 그 사람의 일 중에서 가장 큰 근본이 되는 것은 바로 농업이다. 농업의 가치란 단순히 식량을 생산하는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하늘의 도움을 받아 땅을 살리고 키워나가는 일, 어찌 큰 근본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