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쌀 관세율 검증 4년 넘게 결론 못내
2015년 관세화 이후 수출국과 검증 협상 난항 입장차 커 합의점 못 찾아
베트남 제외 4개국은 자국 쌀 안정적 수출 위해 국별쿼터 부활 한목소리
밥쌀용 비중 재설정도 요구
정부 “밥쌀용 의무수입 비중 되살아나지 않도록 하겠다”
쌀 관세율 검증 협상이 2015년부터 4년 넘게 진행되고 있지만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가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한 쌀 관세율 513%에 대해 미국·중국 등 5개국이 ‘관세율이 너무 높다’며 딴죽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자국의 쌀 수출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해달라’는 이들 국가의 요구도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정부가 의무수입하는 쌀에 국별쿼터(CSQ)를 다시 부여하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쌀 관세화란=관세화란 허가제 등 상품의 수입을 제한하는 수단을 없애고 관세를 통해서만 수입을 규제하는 제도다. 관세만 내면 누구나 외국 상품을 자유롭게 수입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전면개방’을 의미한다. 현재의 무역질서를 규정한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서는 ‘예외 없는 관세화’ 원칙이 채택됐다. 다만 우리나라는 쌀에 대해 10년(1995~2004년)간 예외를 인정받았다. 이것이 관세화 유예다. 우리나라는 2004년 쌀 재협상을 통해 관세화 유예를 10년(2005~2014년) 연장했다.
관세화 유예는 공짜가 아니다. 관세화를 두차례 미룬 대가로 우리나라는 일정량의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했다. 저율관세할당(TRQ) 방식인 의무수입물량은 1995년 5만1307t에서 관세화 유예 마지막해인 2014년 40만8700t으로 늘었다.
정부는 2차 관세화 유예가 끝나갈 무렵인 2014년말 쌀 관세화를 선언했다. 관세화를 다시 유예하려면 의무수입물량을 늘려야 하는 등 추가적인 대가 지불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2015년 1월1일부터 쌀도 관세화로 전환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쌀 관세율을 513%로 설정했다. 하지만 미국·중국·호주·태국·베트남 등 5개국은 ‘관세율이 너무 높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양자협의를 통해 이들 국가가 이의를 철회해야만 513%가 최종적으로 확정된다.
◆진전 없는 관세율 검증=양자협의는 2015년부터 시작됐지만, 아직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513%의 관세율을 놓고 우리나라와 5개국의 입장차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관세율은 ‘UR 농업협정문 부속서 5’에 따라 기준연도인 1986~1988년 국내외 쌀값 차이(관세상당치)에 일정 감축률(10%)을 적용해 산출한다.
정부는 국내가격으로 당시 농수산물유통공사(현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조사한 국내 소비지 도매가격 중 상품과 중품의 산술평균가격을 사용했다. 국외가격은 기준연도 중국의 수입가격을 차용했다. 당시 중국은 연간 40만t의 외국쌀을 현미와 백미 형태로 수입했다. 중국가격을 활용한 덕분에 513%라는 고율관세 설정이 가능했다.
문제는 이들 5개국이 ‘왜 한국이 실제 수입한 쌀가격을 사용하지 않고 중국 수입가격을 사용했느냐’며 이의를 제기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1986~1988년 연평균 790t의 쌀을 수입했다. 당시 수입가격은 1t당 340달러 정도였다. 이 가격을 사용하면 쌀 관세율은 513%가 아니라 200% 수준으로 내려간다.
이에 대해 농림축산식품부는 “당시 수입된 쌀이 아주 적은 데다 외화획득용이어서 대표성이 떨어진다”며 “WTO 규정에도 ‘당사국이 수입한 쌀가격을 적용하는 게 불합리하면 인근 국가나 주요 수출국의 가격을 사용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는 만큼 513% 적용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국별쿼터 부활 요구도=베트남을 제외한 4개국은 국별쿼터 부활도 요구하고 있다. 국별쿼터는 2004년 우리나라가 관세화를 10년 더 미룰 때 그해 전체 수입량 20만5228t을 과거(2001~2003년) 수입실적에 따라 미국(5만76t)·중국(11만6159t)·태국(2만9963t)·호주(9030t)에 배분한 이후 2014년까지 유지됐다. 관세화 유예 연장에 따른 대가 중 하나다.
우리나라는 2015년 쌀 관세화를 단행하면서 국별쿼터를 없애고 글로벌쿼터로 전환했다. 기존에 쿼터를 갖고 있던 4개국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쌀 수출장치가 사라진 셈이다.
다만 우리나라는 곡종별로 쌀을 수입해 사실상 국별쿼터를 유지했다. 중국은 단립종, 미국·호주는 중립종, 베트남·태국은 장립종이 주력 곡종이기 때문에 수입쌀을 입찰할 때 특정 곡종만 가능하도록 지정하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해당 국가 이외에는 입찰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베트남이 단립종 재배를 늘리는 등 동남아국가의 다곡종 진출로 이러한 판도가 급변하고 있다는 게 농식품부의 설명이다. 입찰가능 곡종을 단립종으로 지정하면 예전에는 중국이 해당 물량을 낙찰받을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베트남이 단립종을 낙찰받고 있다. 베트남쌀의 가격경쟁력이 워낙 높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베트남을 제외한 4개국은 자국 수출물량이 보장되지 않으면 관세율을 문제 삼겠다는 입장이다.
◆밥쌀용 쌀 수입도 늘어나나=이들 국가는 우리나라의 의무수입물량 중 밥쌀용 비중을 다시 설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까진 의무수입 쌀은 전량 가공용이었지만, 그해 쌀 재협상에서 쌀 수출국들의 강한 반발로 밥쌀용 의무수입 비중이 설정됐다. 2005년 10%이던 이 비중은 관세화 직전연도인 2014년 30%까지 확대됐다.
하지만 2015년 쌀 관세화 전환과정에서 정부는 이 비중을 폐지했다. 밥쌀용이나 가공용을 미리 구분하지 않고 우리의 필요에 따라 수입하겠다는 얘기였다. 이 조치로 인해 2014년 12만여t에 달하던 밥쌀용 쌀 수입량은 현재 4만t 수준으로 줄었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관계자는 “밥쌀용 쌀 의무수입 비중이 되살아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밥쌀용 쌀 의무수입 비중을 부활하는 문제는 국별쿼터와는 차원이 다르다. 밥쌀용 쌀 수입량이 늘어나면 가뜩이나 공급과잉 구조인 국내 쌀시장에 큰 부담이 될 것으로 우려된다.
서륜 기자 seolyoon@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