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본토 핵세례 각오하고 한국 보호할 수 있을지 ‘의문’
튼튼한 남북관계 하부구조 위해 한국 쌀-북한 특산품 교환하면 대화 분위기
부드럽게 만들 수 있어
핵무장같은 군사적 대치보다 남북한 상생관계 만드는 게 중요

북한이 7월4·28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고, 잇따라 9월3일에는 수소탄에 가까운 핵실험을 해 한반도의 안보구도가 확 바뀌었다. 이제 미국이 내일 당장 북한을 선제공격한다고 해도 뜻밖의 일이 아니게 됐다.
미국은 이기적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착실히 개발할 때는 핵무기와 핵물질의 비확산(대외수출 차단)에만 신경을 썼다. 북한이 이미 가진 핵탄두를 스커드미사일이나 노동미사일에 탑재해 남한을 공격할 능력을 갖췄어도 미국은 심각하게 걱정하지 않았고 실효성 있는 대응책도 세우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 본토까지 타격할 수 있는 화성-14 시험발사를 두번 하자 비로소 북한의 핵위협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화성-14가 사거리를 조금만 늘리면 미국 동부의 뉴욕과 수도 워싱턴까지 핵공격을 받을 수가 있다. 이것이 한반도 안보게임의 룰을 바꿔버렸다. 지금 한국은 미국의 핵우산을 포함한 이른바 확장억지력의 보호를 받고 있다. 하지만 미국 본토가 핵을 탑재한 북한 ICBM의 위협을 받게 된 지금, 미국이 과연 뉴욕·워싱턴·시카고·로스앤젤레스에 대한 핵세례를 각오하고 한국을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처음에는 김정은과 대화를 통해서 핵과 미사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엔 안보리에서는 강력한 경제제재 결의안 2371호의 채택을 밀어붙이고, 중국의 시진핑에게는 북한에 원유공급 중단을 포함한 일체의 상거래를 끊으라고 압박해왔다. 모두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안보리 제재는 북한이 아플 만큼의 효과를 못 내고, 중국은 북한 정권의 붕괴와 남한주도의 흡수통일이 두려워 원유공급 중단만큼은 결행하지 못한다. 트럼프에게 남은 카드는 군사적으로 북한을 선제공격해 핵·미사일 시설을 파괴하거나 김정은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북한은 산악지대가 많다. 핵·미사일은 북한 전역 수많은 땅굴이나 계곡에 숨겨두고 있다. 김정은의 은신처도 수십군데나 돼 미국의 인공위성이 그의 위치를 탐지해 토마호크미사일이나 벙커버스터로 김정은을 제거하는 것은 한강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만큼이나 어렵다.
미국이 군사행동을 하면 목적 달성에는 실패하고 북한에게 한국과 일본에 대한 미사일 공격의 빌미만 줄 수가 있다. 광적인 백인우월주의자 트럼프는 한국 사람들이 한국 땅에서 죽는 것은 상관없다는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최근에는 대화를 계속 모색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을 꾸짖는 글까지 트위터에 올렸다.

우리가 살길은 우리가 찾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되는가.
(1) 백악관 고위 참모진과 전쟁의 생리를 아는 미군 수뇌부에는 트럼프의 군사적인 선택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다수다. 그들이 트럼프의 모험주의를 견제하게 해야 한다. 김정은의 군사모험주의를 걱정하던 우리가 미국 대통령의 모험주의까지 걱정하게 될 줄은 몰랐다.
(2) 괌에는 전략폭격기·스텔스전투기 등 가공할 전략자산들이 많다. 태평양 바다에는 언제든지 출동할 수 있는 항공모함전단이 대기하고 있다. 그런 전략자산들을 한반도에 상시 순환 전개해 김정은의 도발의지를 꺾어야 한다.
(3) 지금은 때가 아니지만 적당한 분위기가 갖춰지면 북한과 대화를 모색해야 한다. 고위 당국자 회담, 군사회담도 중요하지만 경제협력 논의도 중요한 의제가 돼야 한다.
(4) 튼튼한 남북관계의 하부구조를 구축하기 위해 남북한의 시·군 단위가 상호 자매결연을 하고 남아도는 한국의 쌀과 북한의 해당 시·군 특산품을 교환한다. 현재 남한의 남아도는 쌀 재고량이 200만t이나 된다. 쌀 10만t 보관·관리 비용이 연간 300억원에 달한다. 국제제재 아래서 남한 쌀을 북한에 수출할 수는 없다. 북한은 ‘지원’이라는 말도 질색한다. 그러니 남한의 쌀과 북한의 특산품을 주고받는 방법이면 남북한이 윈윈하면서 대화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마사지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같이 무모한 사람이다. 그는 전장(戰場·battle ground)이 미국만 아니고, 희생되는 사람들이 미국인들만 아니면 언제든지 진군나팔을 불고 공격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전쟁은 절대로 안된다는 한국의 입장을 트럼프에게 분명히 밝힌 것은 적절한 조치다.
우리의 당면한 목표는 평화다. 평화를 유지하면서 남북한이 대화하고, 대화를 통해서 다음 목표인 북한 핵·미사일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문제는 김정은의 환상이다. 그는 작고 가벼운 핵탄두를 ICBM에 실어 미국 본토까지 공격할 능력만 갖추면 당당한 핵 보유국가로 인정받고 미국과 대등한 높이에서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위한 협상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미국도 흔들리고 있다. 핵·미사일을 지금의 수준에서 동결시키는 대가로 경제제재를 풀고 한미연합군사연습도 중단할 수 있다는 말이 워싱턴에서 계속 흘러나온다. 핵·미사일을 동결해도 남한을 직접 위협하는 미사일은 남는다. 그것은 본토 방어를 위해서는 동맹국인 한국이 북한의 스커드미사일과 노동미사일에 탑재된 핵탄두의 공격을 받는 것을 묵인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런 배경에서 전술핵 재배치와 자체 핵무장론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전술핵은 북한의 전략핵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다. 자체 핵무장은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핵 강국들의 반대와 방해로 실현가능한 것이 아니다.
군사적인 대치와 대결로는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킬 수도 없고 남북한이 경제적으로 상호보완하는 상생관계를 만들 수도 없다. 결국 기댈 곳은 풀뿌리 수준의 사회·경제 교류뿐이다. 쌀이 모자라는 북한, 쌀이 너무 많이 남아서 걱정인 남한이 쌀을 매개로 관계를 개선하는 것은 진공상태를 허용하지 않는 자연의 법칙과 같은 것이다.
김영희 (중앙일보 국제문제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