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1945년 이후 독립한 제3세계 가운데 ‘근대화’를 유일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성공했음에도 한 국가의 기초이자 기본인 생명자원 자립에는 무관심했다. 생명자원(Life Resources)이란 먹거리와 에너지다. 생명을 지키는 두 요소다. 형태는 여러가지지만 생명자원의 자립 없는 선진국은 없다. 특히 먹거리의 경우 선진국은 밀·보리·감자 등 기본식량 자급률이 100%에 이른다.
대한민국은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잉여농산물’ 원조로 배를 채웠다. 오늘날 선진국은 기후가 좋건 나쁘건 먹거리는 남아돈다. 유럽연합(EU)의 농업정책이란 농산물 생산 억제 정책이다. 에너지도 마찬가지다. 프랑스는 잉여원자력 발전 에너지를 수출하는 전기 수출국이다.
그런 점에서 소득 2만달러를 넘어선 선진국 중 에너지와 먹거리의 생명자원이 완전히 부족한, 즉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선진국인 일본·싱가포르·대한민국은 극단적으로 예외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스위스의 사례를 보자. 스위스의 모든 가정은 항상 2주일치 식량을 비축한다. 전쟁 등 비상시국이 선포되면 10일간 일절 식량판매가 중지되고 10일 뒤부터 배급계획, 농경지 확대계획이 발
동된다. 스위스는 마을마다 단계별 경작 설명서가 비치돼 있다. 설탕·쌀·보리·밀·옥수수·커피·홍차·건조과일·건조야채 등은 정부가 저장하고 전시엔 판매중단, 배급지시권을 보유한다. 이렇게 자유경제와는 거리가 먼 스위스의 농업 관리는 중립지향 평화를 지키기 위한 생명자원 확보 노력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석유를 100% 수입하고 빵은 38%에 불과했던 먹거리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1940년 바렌계획을 폈다. 스위스는 1945년까지 5년간 감자 3배, 야채 4배 증산에 성공했다. 우리나라 곡물자급률은 2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83%보다 현저히 떨어진다. OECD 국가 중 자급률 20%대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그만큼 한국과 일본은 먹거리 특히 곡물 재배 자연조건이 유럽과 미주대륙 그리고 동남아시아와 비교하면 극히 불리하다. 1인당 농지면적을 보아도 한국은 330㎡(100평)이다. 러시아 3만2000㎡(9700평), 미국 5851㎡(1770평), 덴마크 4165㎡(1260평), 스위스 2036㎡(616평)는 물론 중국의 991㎡(300평), 일본 347㎡(105평)보다도 작다. 그러다보니 한국에서 먹거리 자립·자급이란 하나의 이상이나 꿈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만성화됐다. 먹거리와 에너지 자립 없이는 선진국도 없다. 생명자원 자급 없는 평화는 없다는 명제를 너무 오랫동안 망각해왔다. 요사이 중국·일본·북한·미국의 심상찮은 안보 충돌을 겪으면서야 조금씩 깨달아가는 듯하다. 이제 대한민국의 먹거리 자립은 첫째, 안보 차원을 고려하는 것이라야 하고 둘째, 해외 먹거리 자원개방과 유통기구 확보이고 셋째, 제4차 산업혁명의 활용이다. 이제는 우리가 모두 대한민국의 자립자강을 위한 구성원으로서 행동해야 한다.
1973~1974년과 1979~1980년 석유파동을 기억할 것이다. 세계 최대 원유생산국인 미국이 세계 최대 원유수입국으로 전락하면서 지정학적 정치 안보 위험이 촉발했다. 중국과 인도의 먹거리·에너지 수요 급증 현상은 또 하나의 세계 생명자원 문제 촉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예상할 수 있다. 한국의 농업은 이렇게 우리나라를 넘어 특히 중국발 세계 문제의 도전에도 대처해야 한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물건값보다 사람값이 쌌다. 기계화로 말미암아 대량생산으로 물건값이 싸지면서 사람값이 올라갔다. 사람값이 비싸던 20세기 호황으로 환경파괴·자연파괴가 증가하면서 이제는 사람값보다 자연값이 더 비싼 시대, 초근대화가 전개되고 있다.
자연의 모태를 간직한 자연의 농업인 유기농, 자연친화적 유기농이 가장 비싼 시대가 된다. 대한민국에서 생산되는 모든 농산물을 유기농화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대한민국의 자연을 세계에서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자연으로 만드는 농업을 꿈꿔보자. 그리하여 대한민국을 가장 평화로운 자연의 나라로 만들자.
김진현(세계평화포럼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