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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헌법 제121조 1항은 ‘국가는 농지에 관해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농지법 제6조 1항은 ‘농지는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한다’며 경자유전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런 원칙은 소유자가 농민일 때 농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보전할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제헌헌법 이후 경자유전 원칙은 우리 농지제도의 근간을 이루며 변함없이 계승돼왔다. 전문가들은 이런 원칙이 사라지면 전국에 투기열풍이 일면서 농지 훼손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흔들리는 경자유전 원칙은=경자유전은 실제 농사를 짓는 농민만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이 원칙이 헌법에 명시된 것은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이 처음이다. 그렇지만 우리 정부는 1948년 제헌헌법부터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한다’며 경자유전 이념을 우회적으로 표현해왔다. 거대자본의 투기적 농지소유를 방지하고, 농지보호를 통해 식량자급을 높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1970~1980년대 급격한 산업화 과정을 겪으면서도 경자유전 원칙은 농지 관련 제도의 근간으로 자리매김했지만, 1990년대 들어 조금씩 훼손되기 시작했다. 1990년 영농조합을 시작으로 농업법인의 농지 소유가 허용됐다. 1996년에는 농지법이 제정되면서 도시거주인도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받아 농지를 소유할 수 있게 됐다. 또 법 시행 이전부터 소유한 농지의 임대차가 이때 합법화됐다. 2003년에는 농가가 아니더라도 1가구당 1000㎡(약 300평)까지 주말영농이나 체험영농을 목적으로 농지를 취득할 수 있게 됐다.
이런 식으로 비농민이 농지를 소유하는 길이 여러 방면으로 열리면서 ‘경자유전 원칙을 굳이 헌법에 명시해야 하느냐’는 지적이 비농업계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임차농지 비중은 2005년 42.3%에서 2015년 50.9%로 확대됐다. 경자유전을 제대로 지키는 농지가 절반도 안된다는 의미다.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가 경자유전 조문 삭제를 검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개헌특위는 경자유전 원칙에 대한 농민단체 의견을 수렴하면서 ‘농촌인구 감소 등 시대상황적 변화를 반영하자’는 의견이 있다고 밝혔다. 농업이 위축되고 농촌인구가 줄고 있는데 꼭 농민만 농지를 소유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미다.
◆왜 유지해야 하나=농지는 농민의 핵심 생산수단이자 주요 자산이다. 이런 농지가 대기업이나 거대자본의 투기수단으로 변질되면 농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 임차농지를 구하려는 무한 경쟁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특히 경자유전 원칙이 사라지면 농지 투기현상과 더불어 농지규제 해제 요구가 봇물을 이루면서 한국농업의 근간이 흔들릴 것이란 게 농업계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이종혁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부장은 “농지를 농민들이 소유하지 않는다면 투기대상이 될 것이고, 농업뿐만 아니라 결국 이 나라도 존재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식량안보 차원에서도 경자유전 원칙을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정부의 2020년 곡물자급률 목표치 32%를 달성하려면 최소 175만2000㏊의 농지를 확보해야 할 것으로 추정했다. 그렇지만 2016년 기준 전국의 농지 면적은 166만7000㏊에 불과한 실정이다. 김현승 가톨릭농민회 조직교육부장은 “한번 전용된 토지를 다시 농지로 복원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식량안보를 지키는 게 시대적인 상황인 만큼 경자유전 원칙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헌법 개정이 검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자유전을 시작으로 개헌특위가 다룰 농업 분야 주요 쟁점에 농업계가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주장도 농민단체 내에서 나온다. 한민수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책조정실장은 “헌법개정 자문위원 53명 가운데 농업계 인사가 한명도 없는 매우 유감스러운 상황이 발생했다”며 “이런 농업 홀대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개헌특위에 농업계 입장을 제대로 전달할 방법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김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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