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똥의 가치를 담은 책을 펴낸 최덕경부산대 사학과교수가 고농서들이 가득한 연구실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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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약(糞藥), 분옥(糞屋), 탈분(脫糞)….
600쪽에 이르는 두꺼운 책 속에 똥이 가득하다. ‘분(糞)’이라는 한자가 자주 보이지만 그러나 저러나 똥 얘기다. 똥에 대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도 ‘지적으로’ 풀어낸 이 책은 최덕경 부산대 사학과 교수(63)가 최근 펴낸 <동아시아 농업사상의 똥 생태학>(세창출판사).
“과거엔 똥을 분약이라고 했어요. 토양에 약이라는 얘기죠. 19세기 일본에서도 똥을 ‘세계 최고의 비료’라고 극찬했습니다. 토양에는 똥만 한 약이 없는데, 요즘 사람들은 똥을 너무 싫어해요.”
고농서로 가득한 연구실에서 만난 최 교수는 이렇게 똥 이야기를 시작했다. 똥을 이용한 선조들의 지혜를 현대인들이 스스로 폐기해버렸다는 것이다.
농업사를 연구하는 최 교수가 똥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미국의 농업관료인 F.H 킹이 20세기 초 동아시아를 여행하며 쓴 <4천년의 농부>라는 책을 본 이후부터다. F.H 킹은 똥을 비료로 이용하며 환경까지 보전하는 아시아 국가들을 보면서 놀랐다고 한다. 아시아의 지혜를 살려 최근 똥의 자원화를 실천하고 있는 서구인들과 달리, 우리 가치를 스스로 버린 데 대한 농업사학자로서의 자괴감과 책임감이 그를 ‘똥통’(?) 속으로 빠트렸다.
특히 그는 똥을 비료로 활용한 역사가 한국·중국·일본 세나라에서만 이어져왔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래서 이 세나라의 똥과 관련된 역사를 파고들었고, 자료 수집부터 집필까지 7년 가까이 걸렸다.
똥을 이용한 역사는 중국의 갑골문에서부터 나타난다. 사람 똥보다는 가축 똥이 먼저 자원으로 이용됐으며, 10세기 벼와 뽕나무·채소 재배가 본격화되면서 똥의 수요가 확대됐다. 똥은 황금으로 인식될 정도로 소중한 비료가 됐고, 지력을 개선해 휴경을 극복하고 많은 인구를 먹여 살렸다.
똥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다양한 방법도 등장했는데, 최 교수는 ‘분단(糞丹)’이라는 중국의 비료에 주목했다. 분단은 취급·운반·저장이 어려운 똥의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 똥에 곡물과 광물질을 농축해 만든 복합비료다.
“근대화 이전 중국에서 서구의 화학비료와 같은 복합비료가 연구됐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명대 후기에는 똥의 취급과 운반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인건비가 올라가면서 취급이 용이한 비료를 모색하게 된 거죠.”
또 다른 흥미로운 사례는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을 팔았던 것처럼 과거엔 똥도 사고팔았다는 것이다. 똥을 거래하는 중간상인이 존재했고, 조선에서는 한양의 똥을 근교에 팔아 부를 축적했다. 똥을 운반할 때 이용하던 ‘똥배’도 한국과 일본의 사료에서 확인됐다.
최 교수는 옛 소설까지 뒤져가며 똥의 역사를 찾아냈다. 청나라 초 <굴신갱간귀성재주>라는 소설은 공동측간을 만들어 똥을 비축해 팔던 이야기로, 탈분(똥을 쌈)을 유도하기 위해 화장지를 제공한 일화도 나온다.
똥에 대한 관심은 측간과 측신으로까지 이어졌다. 특히 측간에 있는 측신은 민속학적으로도 의미 있는 소재다. 한·중·일 모두 측신신앙이 있었고, 논농사가 발달한 지역에 더욱 성행했다.
“밑거름과 덧거름을 하는 논농사에 똥이 더 많이 활용된 겁니다. 측간의 구조도 논농사지역에서 더욱 다양하게 변화했어요. 우리나라도 전라도지역에 측신신앙이 많이 남아 있어요.”
그렇게 잘나가던 똥은 19세기 근대화 과정 속에서 시련을 겪게 된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위생과 청결이라는 명목하에 화장실 구조가 수세식으로 바뀌고 농약과 화학비료가 똥을 대신하게 된 것이다. “똥은 배설과 동시에 물과 함께 멀리 보내버리는 혐오스러운 물건이 됐다”며 김 교수는 안타까워했다.
“사람들은 유기농산물을 찾으면서도 가장 친환경적인 비료인 똥으로 재배했다고 하면 오히려 꺼립니다. 똥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해요. 똥을 소중한 자원으로 인식하면 우리의 먹거리와 생태환경을 지킬 수 있습니다.”
7년간 푹 빠져 있던 똥통 속에서 나온 최 교수는 이제 또 어떤 역사 속으로 들어갈까. 중국 농업사를 전공한 그는 <중국 고대농업사 연구> <진부농서 역주> 등을 펴냈으며, 동아시아농업사학회 부회장도 맡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농촌과 농민의 생활사에 대한 연구도 하고 있다.
“그동안 농업사 연구는 생산력을 밝히는 데 국한돼왔으나 이제는 농업·농촌·농민·식생활·환경까지 아우르며 농업사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 합니다. 과거 경제의 중심은 농업이었고 역사를 알려면 농업사를 알아야 하는데, 사실 학자들이나 학생들이 별로 관심이 없어요.”
먹고 싸는 일은 인간의 생존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 중요한 두가지, 농업과 똥의 처지가 어쩌면 이렇듯 비슷할까. 사람들이 잊어버린 가치를 찾아 최 교수는 오늘도 빛바랜 고농서의 책장을 넘긴다.
부산=김봉아 기자 bong@nongmin.com, 사진=김덕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