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부부·1인가구 증가로 밥·반찬 대신 단품·간편식 찾아 바쁜 아침은 대충 ‘때우는’ 수준
밀가루 비중 커지며 국민 건강 위협 현미·잡곡밥 선호 추세는 긍정적 연령대별 바른 식생활 교육 필요
수천년 동안 한국인의 주식은 밥이었다. 주식인 밥에 국과 반찬을 부식으로 곁들였다. 삼시세끼 밥을 챙겨 먹는 것으로도 모자라 죽은 뒤 망자의 입에도 쌀을 넣어줬고 제사상에도 밥을 올렸다.
그런데 과연 지금도 한국인의 주식은 밥일까? 수천년 주식으로서 자리를 지켜온 밥의 입지는 겨우 반세기 만에 위태로워졌고, 이제는 주식의 개념조차 모호해졌다. 그 대신 빵과 면을 필두로 한 밀가루 음식들이 식탁의 가운데를 차지하며 건강마저 위협하고 있다.
식탁에서 ‘주식’이 사라진다
#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서 혼자 사는 직장인 김영찬씨(30·가명)의 아침은 삶은 달걀 2개. 출근 준비로 바빠 아침밥은 포기한 지 오래다. 대신 전날 삶아둔 달걀을 먹는데, 그마저도 못 먹는 날이 많다. 그럴 때면 회사 옆 카페에서 커피와 토스트로 요기를 하거나, 시간이 없을 땐 업무 중에 과자로 때운다.
# 부산 북구 만덕동에 사는 중학생 장연지양(15·가명)은 우유에 시리얼을 말아 아침을 해결하곤 한다. 맞벌이하는 엄마가 밥을 챙겨줄 시간이 없을뿐더러 등교 준비하느라 먹을 시간도 없다. 점심은 학교에서 급식을 주지만, 저녁은 혼자 라면을 끓여 먹거나 햄버거·피자를 사 먹을 때가 많다.
식탁에서 ‘주식(主食)’의 개념이 사라지고 있다. 주식은 매 끼니 주로 먹는 음식으로, 우리 민족의 주식은 오랫동안 쌀이었다. 그러나 1950년대 이후 밀가루 원조와 분식 장려정책, 서구식 식생활의 유입으로 밀가루 음식이 확산됐다. 근래 들어서는 맞벌이 부부와 1인가구의 증가로 간편한 음식을 선호하면서 주식·부식의 개념조차 모호해졌다. 밥과 반찬 대신 빵·면·시리얼·과자·과일·우유 같은 음식이 바쁜 현대인들의 한끼 식사가 된 것이다.
특히 아침은 간편한 음식으로 거의 ‘때우는’ 수준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2016 식품소비행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침식사로 밥을 먹는 비율은 절반 정도에 그쳤다. 성인의 경우 밥 51.9%, 빵·샌드위치 13.8%, 시리얼 9.7%, 죽·누룽지 6.6%, 우유 6.6% 순으로 나타났다. 청소년은 밥 50.1%, 빵·샌드위치 19.2%, 시리얼 12.7%, 죽·누룽지 10%, 우유 3.2% 순으로 밥의 비율이 성인보다 더 낮았다.
면과 빵이 끼니로…영양 불균형
“밥 먹을래, 면 먹을래?”
식당을 선택할 때 흔히 나누는 대화다. 이제 외식 메뉴도 밥과 면으로 나뉠 정도로 면의 비중이 높아졌다. 과거부터 애용돼온 국수·우동·라면·칼국수·자장면에다 파스타·베트남 쌀국수·일본식 라면까지 면의 종류는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이중 베트남 쌀국수 외에는 대부분 밀가루로 만든 면이다.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가공식품 세분시장 현황’에 따르면 2014년 1인당 연간 면류 소비량은 13.3㎏으로, 같은 해 쌀 소비량 65.1㎏의 20% 수준이다.
종류별로는 라면이 가장 많고, 국수·냉면·기타면류·파스타류·당면 순이다. 1인당 연간 라면 소비량은 9.2㎏으로 세계 1위이며, 이를 봉지로 환산하면 76.3개에 달한다.
빵도 간식을 넘어 식사 대용식으로 자리 잡았다. 제빵시장이 성장한 것은 물론 커피와 함께 빵을 취급하는 카페가 늘어 시장 규모가 4조원대에 이르고 있다.
문제는 밀로 만든 면과 빵의 비중이 커지면서 국민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 연구팀은 라면을 일주일에 2번 이상 먹으면 당뇨·고혈압·심장병 등의 발생 위험이 68% 증가한다고 경고했다.
박미진 식생활교육국민네트워크 총괄지원실장은 “주식과 부식으로 이뤄지는 한국식 식단은 면이나 빵으로 된 단품 형태의 식단에 비해 영양학적으로 균형이 잡혀 우수하다”며 “주식과 부식의 개념이 없어지면 한국식 식생활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실장은 또 “쌀 중심의 한국식 식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식생활 교육을 연령대별로 실시하는 한편 최근 추세에 맞춰 쌀을 이용한 간편식을 개발해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미밥·잡곡밥으로 더 건강하게
전통적 주식인 밥도 과거와 달라졌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하얀 쌀밥보다는 거친 현미나 잡곡이 섞인 밥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농경연의 식품소비행태조사에서는 3290가구 중 36.1%가 흰밥(백미)을, 35%가 잡곡밥을 먹는다고 답했다. 또 흰밥과 현미밥을 같이 먹는 비율은 24.9%, 현미밥은 3.4%였다.
<햇반> 같은 즉석밥 시장에서도 잡곡밥이 일정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aT가 2014년 5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79%가 백미 즉석밥을, 21%가 흑미밥·검정콩밥·오곡밥 등을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미나 잡곡은 영양학적으로 백미보다 우수해 이같은 변화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만, 잡곡밥도 제대로 알고 먹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임경숙 수원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잡곡 하나하나는 좋은 영양소를 갖고 있지만 여러 잡곡을 섞으면 영양소가 다 흡수되지 못하고 잡곡마다 호화(糊化) 시간도 다르다”면서 “무조건 많은 잡곡을 섞기보다는 자신에게 맞는 몇가지만 섞어 무엇보다 맛있게 먹어야 지속적으로 밥을 찾게 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