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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쌀 소비 감소세가 멈춰 섰다. 1970년 134.5㎏으로 우리와 비슷했던 대만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계속 감소하다가 2011년에 45㎏으로 멈춰 섰다. 더이상 줄고 있지 않다.
대만의 쌀 소비량은 1970년 134.5㎏으로 같은 해 우리의 136.4㎏과 거의 같았으나 그 이후 20년 만인 1990년에 이미 65.9㎏으로 내려앉을 정도로 가파르게 감소해왔다.
우리는 130㎏ 중반대(1970년)에서 60㎏ 중반대(2014년)로 줄어드는 데 44년이 걸렸으니 이에 비하면 대만의 쌀 소비량 감소 속도는 우리의 2배에 이르는 수준이었다.
원래 대만 쌀 소비 정점기의 양이 1967년 141.5㎏으로 우리나라의 1979년 135.6㎏보다도 많았던 쌀 주식국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감소세가 무척 가팔랐다. 이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서 육류와 과일 소비의 증가 등 식품의 다양화에 의한 식생활의 성숙이 시작된 데 따른 것이었다.
2000년대 들어서도 대만의 쌀소비 감소세는 2000년에 52.7㎏, 2010년 46.2㎏, 2011년 45㎏으로 계속되다가 멈췄다. 2014년, 2015년에는 45.7㎏으로 약간 늘기까지 했다.
이유는 쌀 소비에 대한 정부의 인식 변화와 그 실천방안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만정부는 2006년 하반기부터 2008년 상반기까지 이어진 국제곡물가격 급등, 즉 세계적인 애그플레이션(agflation) 현상을 심상치 않게 받아들였다. 연이어 2009년 8월에 불어닥친 태풍 ‘모라곳’으로 벼농사가 커다란 피해를 본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때부터 대만정부는 쌀 소비는 경제성장에 따라 으레 줄어드는 것이라는 그간의 다소 안이한 상황 인식에서 벗어나 쌀의 생산성 향상뿐만 아니라 쌀 수요 진작에도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쌀 소비가 더 줄어들 경우 쌀 생산기반 유지 자체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당시의 쌀 소비 진작책 중 한 예를 들면 2011년 펼친 ‘매끼 밥 한숟가락 더 먹기’ 운동이다.
그 결과 한해 동안 논 5600㏊분의 쌀을 더 소비했다고 한다. 작지만 효과를 본 정책 중 하나인 셈이다.
대만의 최근 쌀 소비 진작책은 다음과 같다. 기본 개념은 프리미엄 쌀의 유통망을 구축하여 자국 쌀에 대한 인지도와 구매의지를 높인다는 것이다.
그 실천방안을 보면 첫째, 자국 쌀에 대한 고품질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쌀 생산 및 유통 특구’를 조성하고 이 지역 생산농민이 쌀 생산이력제와 안전식품인증제에 적극 참여토록 한다.
또 매년 ‘전국 유명 쌀 산지 챔피언십 대회’를 개최, 농민들이 적정 품종을 선택하여 고품질 쌀을 생산토록 유도한다.
둘째, 식미(쌀 먹기) 교육을 강화하고 ‘지산지소(신토불이)’의 중요성을 홍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쌀의 영양과 문화에 관한 프로그램 ‘식미배움터’를 운영한다. 또한 젊은 학생들이 많이 구독하는 ‘쌍어(영어·중국어)’ 잡지에 쌀에 대한 내용을 적극 게재한다. 그리고 자국 쌀을 사용하고 있는 음식점이나 가공제품에 ‘대만 쌀’ 라벨을 붙여 소비자들이 쉽게 식별·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셋째, 다양한 쌀 제품과 쌀가루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다. 가격경쟁력을 갖춘 가공용 쌀 개발, 쌀가루의 다양한 용도 개발, 쌀가루를 이용한 조리법 경진대회 개최 등과 함께 가공공정을 단순화해 비용을 낮추고 쌀 함량을 50%까지 높인 쌀 베르미첼리(파스타의 한 종류) 제조 공법을 개발한다.
이외에도 도매가격의 50% 수준으로 공급하고 있는 학교급식용 자국 쌀 지원 프로그램을 계속 추진·개선해가는 동시에 쌀 제품의 소비 증대를 위한 홍보 및 전시판매 활동을 적극 개최하는 것 등이다.
물론 대만 학계 일각에서는 쌀 소비량이 이제 줄 만큼 준 게 아니냐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대만정부의 쌀 소비에 대한 엄중한 인식 변화가 쌀 소비 증대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전찬익(아태지역식량비료기술센터 농업경제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