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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식탁이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듯이 피죽도 먹기 어렵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 하면 덜 먹을까’ 하는 고민이 앞설 정도로 식탁이 풍성해졌습니다. 정부창고에는 쌀이 가득 쌓여 있고, 정부나 농민 할 것 없이 ‘풍년’을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불과 30년 전에는 상상조차 어려웠던 일이죠. 그렇지만 식량 사정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23.8%에 불과했습니다. 필요량의 76.2%를 외국에서 사다 먹었다는 의미죠. 식단의 서구화, 농산물시장 개방 확대, 농업 홀대가 빚은 결과입니다.
식량안보 지표는
한 나라의 식량안보를 나타내는 지표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곡물자급률과 식량자급률을 사용합니다.
곡물자급률은 전체 곡물 공급량 가운데 국내산 비중을 말합니다. 쌀은 물론 밀ㆍ콩ㆍ옥수수처럼 수입의존도가 높은 사료용 곡물을 포함하기 때문에 축산업이 호황일수록 자급률이 내려갑니다. 식량자급률은 곡물자급률에서 사료용을 빼고 산출합니다. 식량자급률이 곡물자급률보다 식량안보를 더 잘 반영하죠. 그렇지만 식량자급률 역시 채소ㆍ과일ㆍ축산물ㆍ가공식품을 제외한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권장방식인 칼로리자급률을 사용합니다. 국민들의 모든 음식물 섭취량을 칼로리(열량)로 환산했을 때 국내산 농산물이 차지하는 비율입니다.
과거엔 쌀ㆍ보리ㆍ밀로 한정한 주식자급률을 일부에서 썼지만, 연간 1인당 보리 소비량이 1㎏대로 떨어지면서 지금은 보리를 빼고 산정하거나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공식 용어는 아니지만, 곡물자주율도 언론에서 종종 사용합니다. 국내 곡물 생산분에다 해외에서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물량을 합한 비율입니다.
경제논리에 밀린 취약한 자급률
우리나라의 식량안보는 매우 취약합니다. 지난해 곡물수입량은 약 1600만t으로 국내 생산량 약 500만t의 3.2배에 달했습니다. 이 때문에 곡물자급률은 23.8%에 그쳤습니다. 주식인 쌀 자급률은 101%로 큰 문제가 없었지만, 쌀을 뺀 자급률은 3%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밀이 0.7%, 옥수수는 0.8%에 그쳤습니다. 그나마 사료용을 뺀 식량자급률은 쌀 풍년에 힘입어 겨우 50.2%를 기록했습니다.
칼로리자급률 역시 형편없습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09∼2011년 기준 우리나라 칼로리자급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34개국 중 33위입니다. 가장 최근 자료인 2014년 역시 42%에 불과합니다. 꼴찌 수준입니다.
식량이 부족하면 외국에서 사다 먹으면 된다는 경제논리가 자급률을 이 수준까지 떨어뜨렸습니다. 최근 자유무역협정(FTA)이 확산되는 이유도 이와 비슷합니다. 비농업계는 공산품 수출을 늘려 벌어들인 돈으로 값싼 농산물을 수입해서 먹는 게 효율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시각은 알게 모르게 일반 국민에게도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견해는 식량이 갖는 경제적ㆍ사회적 중요성을 간과한 데서 비롯된 편견입니다.
국제곡물시장 수요·공급따라 가격 요동
일반 상품은 공급이 부족하거나 가격이 급등할 때 소비를 미뤄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식량은 인간의 생존과 직결되는 필수품이기 때문에 소비를 늦출 수 없는 특수성이 있습니다. 식량 수급이 국가 안위와 직결되는 안보 문제로 간주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국제 곡물시장은 전체 생산량 가운데 교역량 비중이 15% 정도에 불과한 ‘얇은 시장(Thin Market)’입니다. 특히 쌀은 교역량 비중이 4∼5% 정도고, 그나마 우리의 주식인 단립종 쌀은 전체 쌀 교역량의 10% 정도에 불과합니다. 얇은 시장은 수요와 공급이 조금만 변해도 가격이 요동칩니다. 2006년 하반기 지구 곳곳에서 기상이변으로 곡물 생산이 줄자 국제 곡물가격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바이오연료용 곡물 수요까지 가세하면서 전 세계가 2년 동안 애그플레이션으로 몸살을 앓았죠. 2006년 6월부터 2008년 4월까지 밀ㆍ옥수수ㆍ콩의 국제가격은 2배, 국제시장에서 거래량이 미미한 쌀은 3배 이상 올랐습니다. 식량이 부족한 30여개국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고, 몇몇 나라에서는 정권이 바뀌었습니다.
부족사태는 언제든 닥칠 수 있어
최근 국제 곡물가격은 안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변동성은 언제든지 확대될 수 있습니다. 토지 제약으로 생산량 증가를 기대하기 어렵고, 잦은 기상이변으로 생산요소의 불안정성도 심화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개도국의 인구ㆍ소비 증가, 바이오연료용 수요 증가, 신흥국의 육류소비 증가는 2000년대 후반 같은 곡물 부족사태가 조만간 재연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10년 후 세계 식량 수요는 14% 증가하는 데 반해 기후변화로 농업 생산량은 2%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세계은행(WB)도 기후변화 여파로 농작물 수확이 줄거나 자연재해ㆍ질병 등이 확산되면서 2030년까지 전 세계 빈곤층 인구가 1억명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식량 수입은 특정 국가나 일부 곡물 메이저에 편중돼 있습니다. 전체 곡물 수입물량 중 80%를 카길 같은 곡물 메이저나 일본계 종합상사에 의존합니다. 또한 장기 공급계약보다는 필요할 때마다 최저가 입찰방식에 따라 구매하는 방식인 만큼 가격위험에 노출돼 있습니다.
2014년 농경연이 G20(주요 20개국)의 식량 가용성ㆍ접근성ㆍ안전성을 토대로 식량안보지수를 산출한 결과 우리나라는 16위로 분석됐습니다. 접근성과 안전성은 비교적 양호했지만, 곡물의 생산ㆍ재고ㆍ교역을 나타내는 가용성 영역에서 최하위권 점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김상영 기자 supply@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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