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 과학계의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과학한림원, 공학한림원, 의학한림원이 공동으로 수행한 연구보고서 `유전자변형작물: 경험과 전망`이 발표됐다. 지난 20년간 미국에서 생산되어 미국민들이 아무런 표시 없이 먹고 있는 유전자변형농산물(GMO)에 의한 인체 및 환경 영향에 대해 70여 명의 연구자들이 900여 편의 연구논문을 조사해 360여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연구보고서를 작성한 것이다.
이 보고서의 결론은 현재 식용으로 판매하는 GM농산물은 안전하며 먹어도 아무 염려가 없다는 것이다.
1996년 유전자변형 콩(제초제 내성)과 옥수수(해충저항성)가 생산·유통된 이래 GM작물의 생산은 비약적으로 증가해 2014년 말 현재 생산면적 기준으로 세계 전체 콩의 79%, 면화의 70%, 옥수수의 32%, 카놀라의 24%에서 유전자변형 신품종이 재배되고 있다. 이로 인해 생산 수율은 22% 증가했고, 농약 사용량은 37% 감소했으며, 농민 수입은 68% 증가했다는 연구보고가 있다. 특히 세계 제1의 곡물 생산 수출국인 미국은 올해 옥수수의 93%, 콩 94%를 생명공학 GM작물로 파종한 상황이다. GM작물 재배로 기존 농업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지구온난화에 대비한 가뭄저항성, 염분저항성, 침수저항성 신품종들이 개발되어 미래 식량 공급의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인 흐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비과학적인 GMO 괴담이 난무하고 있어 GMO에 대해 불안하게 여기는 국민이 많다.
반GMO 운동가들의 과학에 근거하지 않은 주장은 그렇다 치더라도 일부 국회의원들이 GMO 표시 문제를 정치 이슈화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한 처사라는 것이 세간의 평가다.
GM식품 표시 확대은 요구는 GMO에 불안해하는 소비자의 알 권리 충족이라는 관점에서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나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좀 더 신중해야 할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유전자변형 원료를 사용한 모든 식품은 표시를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가공 과정에서 외래 유전자나 그로 인한 단백질이 제거된 식용유나 간장 같은 제품은 일반 제품과 성분상에서 전혀 차이가 없으므로 진위를 검증할 수 없어 표시를 의무화하지 못하고 있다. 제조업체의 원료 구입 기록으로 추적 조사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외국산 제품은 이력 추적이 사실상 어렵다. 결국 국산품만 GMO 표시가 의무화되는 셈이어서 국내 기업의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생산되고 있는 일부 식용유와 간장은 시판이 승인된 GM 콩이나 옥수수를 원료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 음식 중 식용유와 간장이 들어가지 않는 음식은 거의 없으므로 GM식품 표시제를 확대하면 거의 모든 가공식품에 GMO 표시가 붙게 된다.
그동안 반GMO 운동가들에 의해 불안감이 확산된 상태에서 모든 식품에 GMO 표시가 붙게 되면 광우병 대란 이상의 사회적인 동요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먹을 게 없다고 아우성치는 소비자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표시제를 확대하기 전에 승인된 GMO에 대한 불안감부터 먼저 해소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쌀 이외의 식량(곡물)은 거의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다. 세계 시장에 나오는 콩, 옥수수, 카놀라 등 주요 곡물의 대부분이 철저한 안전성 검사를 거쳐 시판이 승인된 GM작물이다. 미국인, 일본인모두 먹고 있는데 우리만 표시하고 겁을 주면 식량을 제대로 공급할 수 없게 된다. 우리나라의 식량안보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GM식품 표시 문제를 소비자의 알 권리 수준에서 가볍게 다룰 수 없는 이유다. 정부는 국가안보적 차원에서 GMO의 안전성과 유용성에 대한 국민 교육을 서둘러 시행해야 한다.
[이철호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