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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는 무엇을 어떻게 먹는가. 그 전형을 담고 있는 것이 <논어> 향당(鄕黨)편이다. 모두 17개 절(節)로 구성된 이 편은 공자의 일상생활을 그 제자들이 살펴보고 자세하게 기록한 것으로, 8절에서 공자의 식생활을 다루고 있다.
“쉰밥과 상한 생선·고기를 먹지 않으시고, 빛깔과 냄새가 나쁜 것·제대로 익히지 않은 것과 제철이 아닌 것을 먹지 않으셨다. (중략) … 밥상에 고기가 많아도 밥의 기운을 이기게 하지도 많이 드시지도 않으셨고, 비록 거친 밥과 나물국이라도 반드시 공경하게 고수레(祭)를 하셨다.”
불과 110자에 지나지 않는 가르침이지만 2500여년이 흐른 지금도 허투루 여길 내용이 없다. 그중에서 주목할 부분은 ‘거친 밥과 나물국이라도 반드시 공손한 자세로 고수레를 했다(雖疏食菜羹이라도 瓜祭하사되 必齊如也러시다)’는 대목이다. 옛 사람들은 음식을 먹을 때 차려진 음식을 조금씩 덜어 그릇 사이에 놓아 그 음식을 만든 사람에 대한 예의를 표시했다. 이는 밥상에 오른 음식의 근본을 잊지 않으려는 자세에서다. 사실 거친 밥과 나물국은 성인의 입장에서 하찮은 음식일 수 있지만 공자는 언제나 공경하는 마음과 자세로 예를 갖추었다고 한다.
소설 <홍길동전>을 쓴 허균(許筠)도 <한정록(閑情錄)>에서 밥상 앞에서는 반드시 그 음식에 들어간 공력(功力)을 생각하라고 했다.
“음식은 땅을 일구고 작물을 심고 거두어 빻고 물에 씻은 다음 끓여서 만든 것이니 노력이 많이 들고, 한사람이 먹는 것은 열사람이 수고한 결과이다. 어릴 때는 부모가 심력을 다해 이룬 것을 먹는 것이고, 벼슬길에 나가서는 백성이 피와 땀을 흘려 만든 것을 먹는 것이니 더 말할 게 없다.”
그러면서 음식은 언제나 약이라고 생각하고 먹어야 몸을 부지할 수 있으며,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항상 약을 먹는 마음으로 음식을 대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먹거리를 대하는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밥 한술, 과일 한조각이 우리네 입에 들어오기까지 농민들이 흘린 땀과 수고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얼마나 가진 적이 있으며, 약을 먹는 마음으로 음식을 대해 보았을까.
살기 위해 먹기보다 마치 먹기 위해 사는 양 하는 이가 늘어나고, 휴대폰을 매개로 온 지구촌이 소통하는 세상이 되면서 입과 코·눈이 즐거운 먹거리를 찾는 이가 넘쳐난다. 집안 냉장고의 속살까지 드러내 보이고, 볼이 터져라 우적대는 모습을 담은 ‘먹방’이 매스미디어(대중매체)를 넘어 개인 간 소셜네트워크(SNS)까지 도배하고 있다. 바야흐로 사람의 입맛을 ‘더 자극적이고 더 달게’ 줄세워 보려는 ‘먹방’의 무한경쟁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어린이 꿈에서 요리사가 대통령을 밀어내고, 맛이나 음식 전문가라는 신종 부류가 등장해 농산물 소비를 들었다 놨다 하는 세상이 돼버렸다. 그들의 말재주에 입맛이 놀아나고 피땀 흘린 농가의 결과물들이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때로는 우유가, 때로는 미나리가, 그리고 얼마 전 매실까지…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완전한 먹거리는 없을진대 정작 자신들은 무얼 먹고 숨은 어떻게 쉬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인간의 입맛만큼 주관적인 판단은 없다. 이에 무슨 절대치가 있을 리도 만무하다. 채식주의자 식탁에 오른 스테이크는 짜증나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하고,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권한 샐러드는 풀무더기에 지나지 않는다. <천자문>에 ‘배부르면 산해진미도 먹기 싫고, 배고프면 술지게미나 쌀겨도 싫어하지 않는다(飽烹宰 饑厭糟糠)’라는 말이 있다. 미각세포는 혓바닥에 있지만 맛은 마음으로 느낀다는 가르침이다. 먹거리의 공급과잉 시대, 사람의 미각과 후각마저도 ‘프랜차이즈’하려는 ‘먹방’에서 벗어나 책장 속 곰팡내 나는 소리라 타박 말고 근본을 생각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대했던 공자의 ‘먹방’, 향당편의 일독(一讀)을 권한다.
한형수(농민신문 문화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