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등 아·태지역 12개국 동참 회원국 GDP 규모 세계 38% 차지 발효즉시 국제무역에 막강한 영향
가입땐 농업무역 4천만달러 악화…생산액도 연 1천억 이상 감소할듯
낙농품 저율관세할당 증량 요구 “쌀 지키려면 타품목 양보”속셈도 동식물 위생·검역규정 완화로 신선과일·축산물 큰 피해 노출
농업계 이어 산업계도 반대커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12개 회원국 경제장관들이 4일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모여 지난해 10월 타결한 TPP 협정문에 정식 서명했다. 회원국들은 각자 비준 절차를 거쳐 최대한 이른 시일에 TPP를 발효하기로 했다. 아시아·태평양 주요 경제권을 하나로 묶은 거대 자유무역지대 탄생이 가시권에 들어온 것이다. TPP 출현은 세계 무역질서는 물론 한국농업에도 새로운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정부의 무게 추는 이미 참여 쪽으로 기울었고, 참여 과정에서 한국농업의 희생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국민의 밥상을 책임지는 한국농업이 또 한번 중대한 갈림길에 선 형국이다. 그럼에도 상당수 농업인들은 TPP의 파급력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TPP의 실체와 한국농업에 미칠 파장을 문답풀이로 알아본다.
Q.TPP란 무엇인가 아시아·태평양 지역경제 통합을 목적으로 2005년 6월 뉴질랜드·싱가포르·칠레·브루나이 등 4개국 체제로 출범한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이 모체다. 이들은 무역에 방해가 되는 관세는 물론 수출입 규제 같은 비관세 장벽을 2015년까지 제거하기로 했다. 초기에는 4개국의 경제규모가 크지 않아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다 2008년 미국이 전격 참여를 선언하면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TPP란 이름도 이때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이후 호주·페루·베트남·말레이시아·멕시코·캐나다·일본이 차례로 가세했다. 2010년 3월 시작된 협상은 30여차례의 공식·비공식 논의를 거쳐 5년 7개월 만인 2015년 10월 완전히 타결됐다. 미국이 중간에 일본을 끌어들이면서 타결이 예상보다 2년가량 지체됐다. 협상 타결 이후에 TPP에 가입하는 나라는 기존 합의사항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
Q.전세계가 주목하는 이유는
TPP는 아시아·태평양에 걸친 12개 회원국 영토를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는 세계 최대의 다자간 FTA다. 세계 1·3위 경제대국인 미국과 일본이 참여하기 때문에 발효 즉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부에 따르면 TPP 12개 회원국의 국내총생산(GDP) 합산액은 26조6030억달러로 전 세계 GDP의 38.2%에 달한다. 유럽연합(EU)의 17조6000억달러를 압도하는 규모다. 무역규모 역시 10조1850억달러로 세계 무역의 27.8%를 담당한다. TPP의 파괴력은 이런 외형보다는 협정문 곳곳에 숨어 있다. 160여개국이 참여하는 세계무역기구(WTO)의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은 농산물 수입국과 수출국,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이견으로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이에 반해 TPP 회원국은 농산물 수출국과 경제 선진국이 대부분이다. 최근 전문이 공개된 TPP 협정문 중 농산물과 관련된 수출보조금, 동식물 위생 및 검역조치(SPS), 저율관세할당(TRQ) 관리방안을 보면 DDA 협상에서 선진국과 수출국이 주장하던 내용과 거의 흡사하다. 향후 DDA 협상이 본궤도에 오르면 TPP 협정문이 본보기가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여기에 미국은 회원국을 더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TPP의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이에 따라 TPP 협정문은 새로운 국제 통상규범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높다.
Q.RCEP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
동아시아를 둘러싼 경제통합은 크게 두가지 흐름으로 전개되는 양상이다. 첫번째 흐름이 TPP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중국 패권’이라는 세계 경제의 구조 변화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미·일 FTA 성격이 짙은 TPP를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맞서 중국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알셉)으로 미국을 견제하고 있다. RCEP에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10개국을 비롯해 한국·중국·일본·호주·뉴질랜드·인도 등 16개국이 참여한다. 당초 참여를 꺼렸던 중국은 한·미 FTA와 미·일 FTA 격인 TPP로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우려해 RCEP에 적극적인 자세로 방향을 틀었다. 연내 타결을 목표로 협상이 진행 중인 RCEP은 자유화(시장개방) 수준이 매주 낮다. RCEP 회원국의 인구는 34억명으로 TPP의 7억8000만명에 견줘 4배 이상 많지만, 전체 GDP 규모는 19조7000억달러로 TPP보다 처진다.
Q.일본의 농축산물시장 개방 수준은
일본 정부는 2010년 10월부터 TPP 협상 참여 의사를 밝혔지만, 농업계의 눈치를 보느라 2년여 동안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농업계와 야당은 물론 집권당인 자민당 내에서도 TPP가 식량자주권을 침해하고 농촌사회 붕괴를 불러올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하는 등 국론이 둘로 갈라졌다. 아베 정부는 이런 점을 고려해 민감한 5대 농산물은 최대한 지키겠다는 약속을 하고 TPP에 참여했다. 미·일 협상에서 일본은 ‘예외 없는 관세철폐’란 미국의 파상공세에 맞서 5대 성역 농산물 관세를 일부라도 남겨뒀다는 명분을, 미국은 무관세 쿼터인 TRQ를 통해 일본시장 진출 기회를 확대했다는 실리를 챙겼다. 일본은 1㎏당 341엔이 부과되는 밥쌀용 쌀 관세를 유지하는 조건으로 일정량의 미국쌀과 호주쌀을 구매하기로 했다. 쇠고기 관세는 현행 38.5%에서 16년에 걸쳐 인하해 최종적으로 9%까지 내리기로 했다. 한·미 FTA와 비교했을 때 일본은 쌀·과일·채소류를, 한국은 축산물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개방했다.
Q.언제 발효되나
TPP 협정문은 모든 회원국이 비준 절차를 마치지 않더라도 일부 국가가 먼저 발효할 길을 열어놨다. 12개 회원국이 서명식 이후 2년 이내에 의회 승인과 같은 국내 절차를 마무리하지 못하면 먼저 비준 절차를 끝낸 국가들의 GDP 합계에 따라 발효할 수 있다. 협정문은 GDP 합계를 ‘85% 이상’으로 규정해놨다. TPP에서 미국의 GDP 비중은 60%, 일본은 18% 정도다. 미국과 일본 중 한쪽이라도 국내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으면 GDP 합계 발효 요건 85%를 충족할 수 없다. 미국과 일본이 TPP의 주축임을 협정문이 명문화한 셈이다. 관건은 미국이다. 내년 1월 임기가 끝나는 오바마 대통령은 올 상반기 내로 비준 작업을 마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미국 상원과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은 올 11월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 이전에 TPP 비준안을 상정조차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TPP는 이르면 내년 하반기에나 발효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Q.추가로 가입하려는 나라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TPP의 잠재력은 예상보다 훨씬 크다. 특히 농산물·공산품 같은 상품 분야에서는 ‘원산지 누적조항’ 때문에 미가입 국가들이 피해를 볼 것이란 게 우리 정부의 판단이다. 이 규정은 회원국 내에서 여러 제조공정을 거치더라도 특혜관세를 인정하는 제도다. 이를테면, TPP 회원국인 베트남 의류업체가 각각 한국과 일본에서 원사를 수입해 옷을 만들어 미국에 수출한 경우 원사의 원산지에 따라 미국이 부과하는 관세가 달라진다. TPP 회원국인 일본산 원사를 사용한 옷은 무관세가 적용된다. 일본(원재료)·베트남(가공)·미국(수입국) 모두 TPP 역내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TPP 미가입국인 한국산 원사를 이용해 만든 옷은 미국 통관 과정에서 관세 20%가 부과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원자재 수출 비중이 큰 한국·대만·필리핀·태국·콜롬비아·인도네시아가 TPP 가입에 적극적이다. 중국도 언젠간 참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은 자국과 이미 FTA를 맺은 나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원국 중심으로 신규 회원을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두 조건을 충족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Q.우리나라도 가입 의사 밝혔나
정부는 대외무역의존도나 12개국과의 무역 관계를 고려할 때 TPP 참여가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관련 절차를 차근차근 밟아왔다. 2013년 11월 TPP 회원국에 ‘관심 표명’을 전달했고, 같은 달 1차 공청회를 개최했다. 이듬해부터는 개별 회원국들과 참여 가능성을 타진하는 예비 양자협의를 두차례 이상 진행했다. 내부적으로는 관련부처 합동으로 TPP 참여가 한국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한 분석작업을 마쳤다. 그렇지만 한국의 참여를 공개적으로 바랐던 미국이 입장을 바꾸면서 계획이 틀어졌다. 미국은 “TPP 협상이 최종 단계에 이른 상황에서 한국의 참여는 타결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우리나라를 배제한 채 협상 타결에 전념했다. 이 때문에 창설멤버 자격을 바랐던 한국은 후발 가입국 입장에 놓여 있다.
Q.입장료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데
정부가 일부 공개한 ‘TPP 심층연구 결과’에 따르면 TPP 참여로 무역수지가 연간 2억~3억달러 개선되고, 불참하면 1억달러 악화될 것으로 분석됐다. 참여해도 농업은 예상대로 타격이 불가피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간 4000만달러(약 400억원)의 무역수지 악화와 1000억원을 웃도는 생산액 감소가 예상됐다. 구체적으로 육류·과실·과채·낙농품을 중심으로 생산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실제 피해는 더 클 것이란 게 학계나 농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TPP 협상이 이미 타결된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후발주자로 참여하면 협상력을 100% 발휘할 수 없다. 기존 회원국들이 후발 가입국에 입장료 차원에서 추가적인 시장개방을 요구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TPP에 참여하려면 12개 회원국으로부터 만장일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단 한 나라라도 반대하면 가입할 수 없다.
Q.기존 회원국들이 한국에 바라는 것은
기존 회원국들이 공개적으로 요구한 것은 없다. 다만 과거 FTA 협상에서 논의했던 사항이나 상대국의 주요 수출품목을 보면 어느 정도 유추해 볼 수는 있다. 가장 껄끄러운 상대는 역시 미국이다. 쇠고기시장 추가 개방, 농약잔류허용기준(MRL) 완화, 농산물 유통업 진출과 같은 비관세 조치를 파고들 수 있다. 캐나다·호주·뉴질랜드는 축산물을 집중 거론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 FTA 수준에 맞춰 쇠고기 관세철폐 시기를 앞당기고, 낙농품 TRQ 증량을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칠레는 2004년 발효된 한·칠레 FTA의 개방폭 확대를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칠레가 재협상을 요구하는 품목에는 감귤·오렌지·파인애플과 같은 신선과일이 대거 포함돼 있다.
Q.쌀도 영향을 받나
만장일치 방식의 TPP 가입 요건은 쌀 개방에 민감한 우리나라에 매우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우려된다. 기존 회원국들이 한국의 가입 조건으로 쌀 개방을 요구하면 정부로선 “TPP를 포함한 모든 FTA에서 쌀을 양허(개방)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뒤집든가 가입을 포기해야 한다. 일본마저 TRQ를 통해 쌀시장을 추가로 개방한 마당에 뒤늦게 뛰어든 한국이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도 많다. TPP 참여는 WTO 차원에서 진행 중인 쌀 관세율(513%) 검증 협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TPP 회원국이면서 우리나라와 쌀 관세율 검증 협상에 나선 미국·호주·베트남은 쌀 관세율 인하, TRQ 물량 증량, 밥쌀용 비중 확대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으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항이지만, 상대국들은 이 문제를 TPP 가입과 연계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다른 참여국들도 쌀을 물고 늘어질 수 있다. 쌀이 한국에서 차지하는 정치적·경제적 민감성을 훤히 아는 상황에서 가장 유용한 쌀 카드를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 만약 우리 정부가 쌀 보호를 이유로 다른 품목들을 양보한다면 농업 내부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Q.SPS 규정이 한국농업에 매우 불리한데
WTO 동식물 위생 및 검역조치(SPS) 협정문은 회원국에 각자 필요한 검역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되, 이를 비관세 장벽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그렇지만 각국은 검역을 통해 자국의 농축산업을 직간접적으로 보호하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농축산물 무역에서는 관세보다는 SPS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FTA에서 갖은 노력 끝에 상대국 관세를 철폐해도 검역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헛일이 되기 때문이다. 2007년 이후 진행된 WTO 무역분쟁의 30%가 농축산물 검역과 관련돼 있다. TPP 협정문은 검역이 무역장벽으로 이용되지 못하도록 세부 규정을 뒀다. 우선 가축 전염병과 식물 병해충 발병 범위에 기존의 ‘지역화’보다 더 좁은 지역을 의미하는 ‘구역화’ 개념을 포함시켰다. 또 지역화 인정 절차와 관련한 수입국 의무를 상세하게 규정했다. 수입국이 수입위험평가 절차를 질질 끌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협정문은 또 SPS 관련 분쟁을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WTO 절차가 아니라 TPP 체제 내의 분쟁협의장치를 통해 신속히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나라가 TPP에 가입하려면 SPS 같은 규범 분야는 기존 합의사항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 현재 수입이 허용되지 않은 신선과일과 축산물의 수입위험평가 절차가 빨라질 수 있다. 검역 협상을 20년 이상 끌어온 미국산 사과·배가 대표적이다.
Q.농업계만 반대하나
산업통상자원부는 신년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국가별 비준동향, 국내 영향분석 결과, 12개 참여국과의 예비 양자협의 경과를 토대로 TPP 로드맵(추진계획)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내부적으로는 TPP 규범이 국제 표준으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며 참여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그렇지만 농업계는 물론 일반 산업계를 중심으로 TPP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아 참여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TPP에는 노동과 환경처럼 기존의 무역협정에 없던 새로운 분야가 대거 포함돼 있다. 자동차·기계 분야는 세계 최고의 일본 기업들과 정면 대결이 불가피하다. 또 복제약품 제조 금지기간 연장 등 미국의 지적재산권 강화 요구에 국내 제약·화학 업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이밖에 국영기업 우대 축소, 정부조달 분야 완전개방, 수산보조금 감축처럼 우리에게 민감한 내용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12개 기존 회원국 중 일본·멕시코를 제외한 10개국과 이미 FTA를 맺은 상황에서 굳이 비싼 입장료를 지불하며 TPP에 가입할 필요가 있느냐는 회의론도 커지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참여 여부를 놓고 2016년 나라 전체가 홍역을 앓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