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국 아이오와주 프레리시티의 GM대두 농장과 곡물엘리베이터(사진 가운데). |
미국의 식품 시장에서도 유기농은 거대한 산업군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유기농과 재래농법은 인류의 식량위기 극복에는 역부족이다. 특히 하루 벌어서 은행대출과 카드대출 상환에 바쁜 저소득층의 식량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은 전혀 못 된다. 홀푸즈마켓 등 유기농 식품점에서 유기농, 재래농법, 지역특산물 표식을 붙인 식품이 불티나게 팔리지만 이 상품들은 중산층 이상 백인들이 대상이다.
홀푸즈마켓에서 팔리는 유기농, 재래식이란 설명을 달고 있는 중남미 에콰도르와 코스타리카산 수입 바나나의 경우 파운드당 가격이 79~99센트에 달했다. 인근 월마트에서 파운드당 55센트에 팔리는 바나나에 비해 2배 가까이 비쌌다. 어차피 바나나의 경우 GM종자 자체가 없어 모두 재래농법으로 재배되지만 오가닉, 컨벤셔널, 로컬이란 꼬리표를 달면서 몸값이 급등한 것. 결국 환경단체와 좌파 시민단체들이 주장하는 유기농, 재래농법은 정작 고소득 중산층 백인들을 위해 봉사하는 식품산업이 돼 있었다. 기자를 태우고 간 흑인 기사 라이베리씨는 “홀푸즈마켓의 식품들은 너무 비싸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적어도 미국의 경우 식량생산자인 농부들 입장에서 유기농과 GM(유전자재조합)식품 간의 싸움은 끝난 상태였다. 아이오와주(州) 디모인 인근 프레리시티에서 1500에이커(약 606만9400㎡) 규모의 농사를 짓는 고든 와세나르(78)씨는 20여년 전부터 GM종자를 사용해 옥수수와 대두농사를 짓는다. 동네친구인 딘 테일러씨도 GM종자로 3000에이커(약 1213만2231㎡)가량의 땅에서 옥수수와 대두 농사를 번갈아 짓는다. GM종자 자체에 가뭄저항성과 해충저항성 같은 특성을 띠고 있어서 제초제와 살충제 같은 농약은 단 한 차례도 치지 않는다고 했다.
와세나르씨와 함께 가본 그의 GM옥수수와 대두 농장에는 제초제를 치지 않았는데도 잡초를 찾기가 힘들었다. 와세나르씨는 아직 수확 전인 GM옥수수와 콩을 따서 우적우적 씹어 삼켰다. 그리고 기자에게 “먹어보라”며 건넸다. 얼떨결에 받아든 팔뚝만 한 크기의 노란 사료용 GM옥수수는 알갱이가 가지런하고 실했다. 벌레가 파먹은 곳은 없었다. 입에 넣고 씹으니 옥수수의 달짝지근한 맛이 느껴졌다.
20여년 전만 해도 상황은 전혀 달랐다. 어렸을 때부터 농사를 지어온 고든 와세나르씨는 잡초와 해충으로 인해 제초제와 살충제를 늘 끼고 살았다. 그는 “살충제와 제초제를 써서 농사를 지을 때는 하루 종일 피곤하고 역한 느낌으로 고생했다”며 “GM종자를 사용한 뒤에는 그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덕분에 일손도 별로 안 들어 와세나르씨는 달랑 3명이서 1500에이커 농사를 짓는다. 인건비를 아끼는 것은 덤이다.
그는 GM의 안전성에 관해서는 자신했다. 와세나르씨는 “우리 집 개가 20년간 매일 GM식품을 먹었다.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자신했다. 와세나르씨에 따르면, 그가 농사를 짓는 프레리시티에서는 GM종자 사용으로 생산성이 늘어난 만큼의 경작지를 자연으로 환원시켰다. 초창기 정착민들이 옥수수 농사 등을 짓던 곳을 버펄로와 엘크 등 야생동물들이 서식하는 자연초지로 지정했다. 과거 옥수수와 대두 농사를 지으면서 제초제와 살충제를 뿌려 대던 곳이다. GM기술이 그만큼 생물다양성 확보에 기여한 셈이다.
미국에서 생산하는 옥수수의 90% 이상은 GM기술을 적용해 길러낸다. 미주리주 체스터필드에 본부가 있는 전미옥수수재배자협회(NCGA)에서 만난 바이오기술 경제분석 디렉터 네이탄 필즈씨는 “줄잡아 90% 이상 미국 농부들은 GM종자 선택을 당연시한다”며 “지난해에는 평균 헥타르당 11톤의 옥수수를 생산했는데 심지어 25톤의 수확을 올린 농가도 있었다”고 말했다.
전미옥수수재배자협회는 1957년 창설한 미국의 옥수수 생산자를 대표하는 최대 단체다. 미 전역에 48개 지부를 두고, 30만 옥수수 농가가 회원이다. 네이탄 필즈씨에 따르면, 미국 옥수수재배농의 경우 다른 나라보다 에이커당 20%가량 수확이 많다. 이를 통해 지난해 90억달러(약 9조5400억원)를 수출해 만성적자에 빠져 있는 미국의 산업 가운데 흑자를 올린 몇 안 되는 부문이다.
밸 기딩스 정보기술혁신재단(ITIF) 선임연구원(박사)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이미 1986년부터 GM 관련 규제정책인 ‘코디네이티드 프레임워크’를 만들어 운용 중이다. 미국은 농무부(USDA), 식품의약국(FDA), 환경국(EPA) 등 3곳에서 각각 농업, 인체, 환경에 위해요소를 유기적으로 감독한다. 캐나다와 호주, 뉴질랜드 등 농업 선진국들도 이를 벤치마킹해 유사한 체계를 도입했다. 잘 정비된 규제·감독 체계 아래서 미국에서는 GM 기술을 이용한 약 4만건의 현장실험이 이뤄졌고, 이 중 120~140건이 상업화하는 등 월등히 앞서가고 있다. GM종자의 경우 개발 단계에서부터 상품화에 이르기까지 평균 13년가량이 걸린다. 종자 개발에 들어가는 평균 금액은 1억3600만달러(약 1440억원)에 달한다. 이런 까닭에 미국의 GM 기술은 우주항공, 군사 분야만큼 후발주자들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앞서가고 있었다.
심지어 듀폰 같은 미국 굴지의 대표기업도 종자기업으로 변신 중이었다. 듀폰은 1802년 창업해 미국 남북전쟁 때 화약을 납품하며 사세(社勢)를 키운 회사다. 이후 나일론, 아크릴, 케블라(방탄섬유) 등 신소재를 만드는 화학기업으로 변했다. 더욱이 1999년에는 종자기업인 파이어니어를 인수해 종자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지금은 듀폰의 지난해 전체 매출 357억달러(약 37조원) 가운데 117억달러(약 12조4000억원)를 종자 분야에서 올린다. 현재 세계 최대 종자기업인 몬산토와 함께 미국의 종자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아이오와주 존스턴에 있는 듀폰 파이어니어의 존스턴 이노베이션센터에서 만난 존 아버클 연구개발담당 부사장은 “나의 할아버지는 일리노이주의 소작농 출신이었다”며 “듀폰 파이어니어에서 일하는 수천 명은 모두 가족이 있고 아이들이 있는 사람들로서 GM작물의 안전성에 관해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렉 다나 듀폰 파이어니어 생명공학 규제담당 이사는 “GM과 같은 안전성 잣대로라면 알러지가 있는 땅콩, 키위 등은 시장에서 진작 퇴출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