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출 칼럼] 농업을 통해 바라본 세상
11. 농업의 세계화, 그리고 우리의 선택
WTO(세계무역기구) 체제, FTA(자유무역협정) 등을 통해 세계적으로 농산물교역의 자유화를 추구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농산물만큼은 무역자유화의 대상에서 제외하여 모든 나라가 가급적 자급자족하는 모습이었으면 좋겠는데, 우리의 희망과는 달리 갈수록 농산물시장도 공산품시장과 마찬가지로 자유화되는 추세이다.
2차 세계대전 후 새로운 세계경제질서를 정한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체제가 들어설 때만 해도 농산물에 관해서는 상당부분 자유무역의 예외조치를 허용했었다. 그러나 WTO 체제가 시작되면서 농산물에 관해서도 엄격한 무역자유화 규정들이 적용되기 시작했고, 또한 지역적으로 FTA가 성행하면서 이제 이러한 흐름은 역전시키기 어려울 만큼 일반적인 추세가 됐다.
농산물교역의 자유화,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농업의 세계화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역사를 살펴보면 그 모습은 매우 다양하다. 기원전 2~1세기경 로마는 카르타고, 이집트 등 지중해 주변의 여러 국가를 정복해 식민지로 삼았고, 그곳에서 밀을 값싸게 들여와 결국 로마의 소농들을 대부분 몰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1492년 콜럼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로는 아메리카 대륙의 옥수수와 감자 등이 유럽으로 공급되기 시작했다. 영국은 나폴레옹전쟁이 종료되면서 국내 곡물가격이 폭락하자 1815년 외국의 곡물을 일정 가격 이하로 수입하는 것을 금지하는 곡물법을 제정했다가, 1846년 소비자와 자유무역론자들의 반발에 부딪혀 동법을 폐지했다. 1870년대가 되면 미국이 유럽의 주요 곡물공급자로 등장한다. 이에 따라 유럽의 농민들이 그만큼 고통을 겪었음은 물론이다.
유럽과 미국 등에서는 자유무역주의와 보호무역주의가 오랜 기간 서로 반전을 거듭해 왔다. 그리고 1980년대에 들어서면 소위 신자유주의라는 물결이 거세게 지구촌을 휩쓸었다. 영국의 대처 수상과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시장개방을 집요하게 요구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한다면 보호무역이나 자유무역이나 그 어느 것도 진리는 아니다. 어느 제도가 어느 국가에 더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따져 그 때 그 때 결정하는 전략적 선택에 불과하다. 지금은 세계경제를 움직이는 주요 선진국들이 자유무역체제를 자신들에게 더 유리한 것으로 판단해 이 제도를 강력하게 밀고 있는 것일 뿐이다.
좁은 땅에 많은 인구를 부양하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현재 상황에서 농업분야를 제외하고는 자유무역체제가 더 유리할 것으로 본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농산물교역의 자유화는 그 시기와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불가피한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농산물교역이 자유화된 세계, 즉 농업도 세계적인 분업체제로 바뀌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농업으로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우리 모두 잘 아는 이야기이지만, 역시 우리가 주력해야 할 부문은 해외시장을 겨냥한 채소, 과수, 특용작물, 관광농업 등이라고 본다. 쌀은 우리의 주식이기 때문에 식량안보 차원에서 국내에 안정적 생산기반을 유지해야 함은 물론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주변의 해외 농산물시장은 매우 크다. 일본의 파프리카 시장에서 네덜란드를 제치고 우리가 일본시장을 석권하다시피 한 그 실력을 과소평가할 필요는 없다. 유능한 농업인들이 적절한 자본을 갖추고 첨단기술을 활용해서 세계시장에 ‘농업한류’를 확산시킬 날을 기대해 본다.
<전 농촌진흥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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