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생한 북한 내부의 정치적 급변 사태가 한반도 통일 논의에 불을 지폈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은 세계적인 주목을 끌고 있으며, 통일 비용과 편익, 통일한국의 경제적 가치에 대한 추론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정작 통일로 가는 합리적 과정과 이를 위한 준비에 대한 논의는 매우 부족하다. 통일의 경제적 비용과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고 경제적 편익과 가치를 높이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2014년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최우선 과제다.
독일 사례에서 보듯이 통일은 한순간에 올 수 있다. 20년간 동독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을 통해 준비했음에도 갑자기 닥친 통일은 천문학적인 비용을 요구했고, 오랫동안 독일경제의 숨통을 조였다. 정권에 따라 대북정책이 널뛰기하는 우리의 경우 통일한국이 짊어질 고통은 훨씬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한반도를 둘러싼 작금의 상황을 고려할 때 체계적이고 일관된 통일 준비가 시급하게 필요하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주문한 대북 식량지원과 농업기술 제공은 최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준비과정이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은 중요한 과제가 북한 내에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농산물도매시장을 설립하는 것이다.
1990년대 북한에서는 급격히 악화된 재정난으로 배급제가 붕괴하고, 수많은 아사자가 발생한 고난의 행군 이후 시장은 북한 주민에게 생존을 위한 절대적 수단이 되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북한의 시장화는 과거 동독이나 개방 당시의 중국을 뛰어넘어 90% 가까이 진전됐다고 한다.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시장은 이미 북한경제의 기본 운영체계가 됐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증명된 바와 같이 북한에서도 시장의 힘은 너무 강해 때로는 체제안정을 위협할 소지가 있었고, 이에 따라 도입된 급격한 시장통제정책은 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할 수밖에 없었다.
시장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기준으로서의 합리적인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다. 무엇을 언제 어떻게 생산·유통·소비할 것인가는 모두 가격을 기준으로 결정된다. 그러나 시장경제와 계획경제의 불편한 동거 속에서 북한의 시장은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다. 북한 정부의 국정가격은 생산과 유통에 혼선만 주고 있으며, 요동치는 시장가격은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심각하게 저해한다. 이는 시장참여자 간 정보의 비대칭성과 상인들의 일방적인 시장교섭력, 그리고 체계적인 시장관리의 부재에 기인한다.
공산주의 종주국인 러시아나 중국이 개방 당시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미국과 유럽의 시장전문가를 초청해 제도적 시장을 건립하는 것이었다. 이는 자생적으로 형성된 시장의 비효율성과 불공정거래 가능성을 최소화하면서 시장경제체제로 효과적으로 편입하고자 하는 당연한 행보였다. 북한 정부에 의해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관리되는 효율적인 시장은 급변하는 남북관계 속에서 시장경제에 대한 불안감과 거부감을 줄이고 경제성장을 촉진하여 통일의 안정적 연착륙을 가능케 할 것이다. 이는 가격안정화와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통해 북한의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커다란 기여를 할 것이다.
통일한국이 시장을 기반으로 운영돼야 한다면 북한 공영도매시장의 설립은 통일 준비의 첫 걸음이 되는 중요한 과제이다. 우리는 이미 훌륭한 도매시장을 운영하고 있다. 외국의 많은 국가가 우리 시장과 운영체계를 배우려고 방문하고 있다. 우리의 이러한 시장운영 경험과 노하우는 개방과 통일을 준비하고 있는 북한에 접목되어 체제이행을 신속하게 하고 통일비용을 낮추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